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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06. 2021

의붓오빠의 만행 (1)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9


 새아빠는 오랫동안 나랏밥을 먹은 공무원이었고 엄마는 주부였는데 재혼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재혼가정을 이루며 새아빠가 데려온 자식 둘, 엄마가 데

려온 자식 둘,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나온 자식 하나.

 도합 다섯의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최대의 난관이

놓여있었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새아빠를 만나 재혼

가정의 미래를 그리던 엄마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고난의 시작이었다.




 엄마의 재혼으로 많은 것이 어려웠지만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돈이었다. 가족은 많은데 돈이 없다는 것......

 

 전래동화의 흥부놀부가 떠올랐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자식들은 주렁주렁 많아서 배곯이하는 아이들.

 물론 우리가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그 밥을 먹으며 마음의 정서 그릇은 텅텅 비어갔다. 내 집이 있고 밥이라도 먹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우리는 거실 없는 반지하 다세대주택에서 살다가 조금

넓은 다세대로, 다시 조금 더 넓은 빌라자주 이사를 다녔다.




 의붓오빠는 나보다 열 살 위서 내가 7살 창 사춘기

를 겪는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8살이었는지 9살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오빠 내게 수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다.


 의붓오빠는 수시로 어린 나를 끌어안고 바닥에 눕히고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옷은 벗기지 않았지만 자꾸만 몸을 세게 끌어안고 알지못할 행동을 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을 때도  상한 위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에 의붓오빠가 누워있

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오빠 왜 여기서 잤어?'하고 물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내 입을 손으로 막았

다.


 소처럼 집에서 놀고 있던 내게 의붓오빠가 이상한 제안

 해왔다. 나에게 그곳을 보여주면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고 과자도 많이 사주겠다는 유혹과 함께....

 장난감과 과자를 사주겠다는 유혹은 꽤나 달콤했지만

나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오빠의 제안을 거부했다. 옷을 벗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내 몸을, 그것도 그곳을 보여준다는 건 좋은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다.

 확신할 수 없지만 이상하고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었던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었을까?

 요구를 거절하자 의붓오빠는 화난 표정으로 '앞으로 인형 이나 과자를 사주지 않겠다'며 휑하니 가버렸다.




 내가 엄마에게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엄마가 

붓 오빠의 못된 짓을 알아차렸다.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

운 소리가 나서 일어나 보니 엄마와 오빠가 싸우고 있었다.

 엄마는 오빠를 때렸고 오빠도 그런 엄마에게 소리치며 대

드는 광경이 보였다.


 '나 때문에 엄마랑 오빠가 싸우나 보다. 나 때문에 엄마가

화났나 보네. 오빠도. '


 엄마는 며칠 후엔가 나를 차 안으로 데리고 갔다. 나란히

옆에 앉은 내 어깨를 잡고 엄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너 오빠가 어떻게 했어. 어?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엄마한테 똑바로 말해! "

 나는 무서운 얼굴로 다그치듯 말하는 엄마가 무서웠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났고 속상해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왜 엄마를 계속 화나게 만들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나중에 자연스럽게 성에 눈뜨고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 면서 의붓오빠가 내게 한 행동의 의미를 아차렸고 수치

심, 불쾌감, 역겨운 감정들이 뒤늦게서야 밀려왔다.


 그때 알았다. 나를 더 아프했던 건 오빠가 저지른 만행

이 아니라 엄마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걸 그녀는 몰랐던 걸까.


 초등학생이 되고 추웠던 겨울을 맞이했다. 어느 날 의붓 언니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맛있는 걸

사 오겠다며 웃던 언니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았다.

언니도 많이 외롭고 아팠겠지.... 잘 가 언니,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내가 언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언니의
안녕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재혼가정의 끝없는 불화와 의붓오빠의 성폭력, 언니의 가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선명해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안고 사춘기를 맞이했다.

 

 내 나이가 11살쯤 되었을때, 나는 나와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일까, 엄마를 왜 나를 낳았 까. 친아빠는 왜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새아빠를 선택한

걸까. 왜, 왜.... '


 작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들이

낯설고 어지러웠다. 내 것이 아닌것같은 인생로 느껴졌

다. 내 삶을 부정하고 싶었던걸까....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의붓오빠도 성년이 되고, 어떤 이유 에서인지 집을 떠났다.




 공무원이던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을 물려 받아 엄마와 함께 자영업을 시작하셨고 집안 형편은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가 고등학생이 될 즈음엔 새아빠

의 공장이 번성하 아빠와 엄마의 얼굴에도 여유가 보이

기 시작했었다.


 나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덕분

 마음의 상처를 덮으며 지낼 수 있었다. 그간의 아픔이 사라진건 아니었지만 웃으면서 잊을 수 있다고 애써 외면

던 게 아니었을지.


 새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도 줄어들었고 가정이 조금 

안정돼가나 싶을 때 의붓오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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