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 여행자 Jul 05. 2021

거추장스러운 혹 덩어리.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8

 

 나는 책 속에서 마법의 나라 오즈로 떠난 도로시가 되기도 하고 성경 이야기 속 '소돔과 고모라'에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캔디가 되어 안소니, 테리우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에 '초콜릿 개 초코로브스키(정확한 제목은 아닐 것 같다) 시리즈가 세 권 정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동물에게서 치유받기도 했었다.


 현실은 비참하리만큼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지만 책 속의 주인공 된 나를 안아주었던 건 나 자신었다.

 먹고 사느라 바쁘고 매일 싸우느라 정신없던 부모에게 내게 따뜻한 말을 해달라, 나를 한 번만 안아달라고 요구하는 건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나는 엄마에게 못마땅한 딸이었다. 돈을 달라고 하면

 '돈이 어디서 펑펑 나오는 줄 알아? 나한테 돈 맡겨놨어? 허구한 날 돈. 돈. 그놈에 돈! 니들이 나가서 돈 벌어와!!' 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허투루 쓸 돈을 달라는 게 아닌데, 공부할 전과 살 돈, 어쩌다 떡볶이 한번 사 먹고 싶어서 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런데도 엄마는 치켜뜬 눈으로 매사에 화를 냈다.


 방이 지저분하다고 잔소리, 동생하고 싸우면 언니답지 못하다고 또 폭풍 잔소리.


 부모로서 속이 상해서 할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엄마는 당근과 채찍이 무슨 관계냐고 물을 정도로 딸들의 감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괴로워서 울면 '우는 소리 듣기 싫어, 딱 그쳐! 빨리 그치지 못해?' 하며 다그쳤고 표정 없이 다니는 모습을 보이면  '어디 부모 앞에서 인상을 팍팍 구기고 다녀? 꼴 보기 싫게. 얼른 인상 피지 못해?' 하며 몰아붙였다.


 엄마를 보면 어느새 몸을 새우처럼 움츠리고 무서워하는 내가 있었고 그런 스스로가 한심했다.

 '나는 정말 엄마 말대로 못난 아이일까? 게으르고 잘하는 것 하나 없이 한심한 인간으로 태어난 걸까?'


 엄마의 작은 비난들이 사이좋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기력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갔다. 단 하루도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었고 일매일 피곤하고 몸이 늘어졌다.




 

 엄마는 본인의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본인의 인생이 너무 괴롭고 버거웠기에 우리의 삶은 신경 쓸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부모는, 특히 엄마는 딸의 전부다.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언행을 보며 배우고 따라 하기도 하고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따르게 된다. 그런데 엄마는 그림자처럼 따르는 우리 자매를 떼어내 버려야 할 귀찮은 혹 덩어리처럼 대했다.


 의붓오빠와 의붓언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새엄마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를 느끼는 대상, 그런 존재였다.


 내 고통은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한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았....  문에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주어 졌는지도 모른다.

 신은 그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그래서 하나님이 욥 재산과 자식들을 빼앗고 가혹한 시험에 들게 하였던가.


 신이 있다면 내게 시련을 주신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지금도 그놈에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8살인가 9살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꺼내본다. 어느 날인지 모를 그 어떤 날에 의붓오빠의 만행이 시작되었다.

 의붓오빠의 행동은 훗날 두고두고 가족들에게 설수로 오르내리며 또 하나의 비극에 일조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남긴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