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오빠는 엄마와 새아빠의 허락으로 공장 곁에 지어두었던 집으로 들어가서 아빠의 일을 거들게 되었다.
우리 집이랑 붙어 있는 집이어서 같이 사는 거나 진배없었
다. 그때는 몰랐다. 온 식구가 의붓오빠의 다사다난한 인생 사를 지켜보며 또다시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게 될 줄은.
나는 대학생활을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허다했
기 때문에 의붓오빠와 마주칠 일이 적었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나에게 저지른 짓이 떠올랐고 오빠
를 마주치면 이상한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그렇지만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시점에 의붓오빠가 내게 저지른 짓을 문
제삼는건 내가 불화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세월은 사람의 성격을 변하게 하는지, 그게 본 모습이었
는 지, 의붓오빠는 변죽 넘치고 넉살 좋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우리 반응이 떨떠름하던 말던 넉살 좋게 말을 시키고 고작 열몇 살 차이의 새엄마에게 '엄마!'하고 부르
는 목소리에는 다정함마저 서려있었다.
엄마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데다가 어떤 날은 의붓오
빠와 엄마의 사이를 부부로 오해받았다며 '엄마'라고 불리
는 것을 지겨워했지만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내가 오빠였다면 주뼛거리며 눈치를 봤을 텐데....
몇 년이 지났을까? 의붓오빠는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데려
왔다. 웃는 얼굴에 화장을 곱게 한 언니는 예쁘고 상냥해
보였고 머지않아 우리를 '아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빠의 결혼생활은 금세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성격이 잘 안 맞는다며 언니와의 다툼이 잦았고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언니의 잘못도 있었겠지만외부적으로는 오빠의 잘못이 더 커 보였다.
의붓오빠는 새언니가 '사치를 하고 살림보다는 겉치장에
신경 쓰는 게 맘에 안 든다, 알고 보니 독한 애'라며 엄마에
게새언니를 헐뜯었다. 엄마도 새언니가 지나치게 꾸미고
얌전히 살림하는 여자는 아니라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오빠의 문제가 훨씬 많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오빠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새언니에게 함부로 대했다.
' 야 거기 설탕 줘봐, 야, 야! 빨리 오라고' 하는 식으로새언니의 이름 대신 '야'를 입에 달고 깔보는듯한 태도로 불렀다. 발로 언니의 다리를 툭툭 건드리기도 했고 언니가 말할 때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하기도 했다.그런 의붓오빠를 보는 새언니의 의기소침한 표정에 내 마음도긴장되었다.
한 번은 새아빠가 그런 오빠를 불러 야단을 쳤다. 거실에
있어도 아빠의 격앙된 목소리가 새어 나와 들렸다.
밖에서 방황하던 자식을 큰 맘먹고 집에 들여 결혼까지 시켰더니 결혼 생활을 이따위로 하느냐. 엉망으로 할거 면 차라리 집에서 나가거라. 마누라는 네 사람인데 존중하고 잘 대해줘야지, 무시 하고 함부로 대하면 되겠냐.
새오빠는 새아빠의 시퍼런 서슬에 눌려 앞에서는 고분고
분하게 대답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본색을 드러냈
다. 새언니와 의붓오빠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멀어졌고
그럴수록 집안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의붓오빠와 새언니
의 안 좋은 사이만큼 새아빠와 엄마도 목청 높여 싸우는
일이 잦았다. 엄마의 한숨소리는 커져갔고 새아빠는 오빠
만보면 잡아먹을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친자식이 속을
썪이니 아빠의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짐작되지 않는
다.
엄마의 신세한탄은 끝날 듯 끝날 줄 몰랐다. 오빠를 내보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기에 억지로 끌어안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의붓언니가 나간 탓이 새엄마인 자신의 부덕
함이라고 여긴 엄마의 선택이 더 큰 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정이 많고 통이 큰 사람이어서 좋아하는 이에게는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색을 과하게 밝힌
다는 단점과, 강한 사람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잘 보이지만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단점이 두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