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돈 주고 신붓감을 사 온다고?
의붓오빠의 수난시대. 02
의붓오빠는 몽골 결혼 사기극으로 한동안 잠잠해졌다.
눈빛만으로 통한다던 몽골 여자는 화려한 화장으로 꾸
며낸 얼굴로 오빠에게 배신을 안겨주고 떠났다.
사기극으로 호되게 혼나고 손가락질당하는 수모를 견딘 당사자가 제일 괴로웠겠지만 옆에서 겪으며 지켜보던
우리 마음에도 그늘이 하나 더 생겼다.
나와 여동생이 각자 대학교를 다니고 집안 형편이 조금
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엄마와 새아빠의 갈등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다.
여동생은 의붓오빠를 싫어했다. 나와 달리 싫어하는 기
색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드러내 놓고 오빠를 무
시하거나 쌀쌀맞은 말투로 말을 건넸다. 의붓오빠는 타
고난 넉살로 웃어넘기곤 했는데 그 행동이 가끔은 도를
지나쳐서 내 기분도 언짢게 하는 것이었다.
의붓오빠의 행동은 가령, 데려온 강아지가 싫다고 버둥
대도 멈추지 않고 뒤집는다거나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우리 곁에 찰싹 붙듯이 않는 등의 행동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오빠 더우니까 너무 붙지 마' 하며 피해서 가버렸
는데, 오빠와 함께 살며 싫다고도 못하고 견뎌내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의붓오빠에 대한 감정들을 삼키고 지내야
했다. 어릴 적 있었던 성추행을 문제 삼는다는 건 또 다른 가정 불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내가 의붓오빠와의 사건을 터뜨리면 새아빠와 엄마는
또 전쟁 같은 싸움을 벌일게 분명했다.
엄마는 '내 새끼한테 더러운 짓거리 한 놈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냐. 애가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 당신 자식이
먼저 냐'며 악다구니를 쓸 것이고 새아빠도 엄마의 공격
에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어쩌면 새아빠와 엄마가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상
상을 하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왜 과거의 일을 들춰내서 분란을 만드냐고, 네가 참으면 안 되겠냐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
엄마는 의붓오빠 하나 만으로도 속이 썩어 나는 사람이
었다. 의붓오빠가 나에게 한 짓을 알고도 그 사실을 감당
하지 못해서 괜찮다는 말 대신, 소리치는 것밖에 모르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차마 내 상처의 짐을 얹어줄 수
가 없었다. 내가 참아야 집안이 조금이라도 조용해질 것
같았다.
내가 대학교를 마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던 어
느 날,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 의붓오빠의 혼담이 오갔다.
동네에 베트남에서 온 여자와 결혼한 아저씨가 있는데 대화를 해보니 베트남 부인이 한국말도 잘하고 싹싹하다
며 베트남 사람을 의붓오빠의 배우자감으로 생각해보자
는 거였다.
베트남 사람을 아내로 들이는 일에는 꽤나 복잡한 절차
가 필요했고 여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자체에 돈이 몇
천이나 들어갔다. 말하자면 신붓감을 돈 주고 사 온다는
얘기인데 나는 별로 탐탁지 않았다. 내 의견이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었는데 베트남 건으로 다시 집
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