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다면 그 결혼은 안했을텐데.
의붓오빠의 수난시대. 04
나는 지금도 의붓오빠의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선택도 그렇지만 특히 결혼은 내 인생 전부가 걸려 있
는 인륜지대사라고 했다. 그런 매우 중대한 일을 부모님에
게 떠밀리듯 감행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만약 나라면 엄마에게 죽도록 맞더라도 베트남 사람과의
혼인은 못하겠다고 애걸했을 것 같은데. 제발 그 결혼만은
안 하게 도와달라고. 그러면 '나 죽었소'하고 납작 엎드려
부모님 뜻에 따라 성실히 살겠노라고....
하지만 의붓오빠는 베트남 여인과의 혼인을 받아들였고
오빠의 승낙이 떨어지자 신붓감 후보자들의 사진이 날아
들었다. 그때 든 생각은 마치 사람을 물건 고르듯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나는 사람을 사귀려면 사계절을 겪어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추고 있었는데 의붓오빠가 단 몇 번
도 만나보지 않은 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새아빠와 엄마, 그리고 결혼 당사자인 의붓오빠는 사진
여러 장을 받아 들고 여자를 골랐다.
얘는 눈에 고집이 있어 보여, 사납겠어.
너무 뚱뚱하지 않니?
아이가 딸렸는데 좀 그렇지?
이 애가 날씬하고 참해 보이네.
평가는 주로 엄마가 내렸고 새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
장구를 치거나 '에이, 이게 얼굴이야? 지꺼(경상도 욕)!
하면서 부정하는 식이었다. (그러고보면 의붓오빠의 외모
밝힘증은 새아빠를 보고 만들어진 사상이 아닌가싶다)
물건도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는 세상인데 인생
을 맡길 배우자를 사진으로 보고 선택해야 하다니....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물건 고르듯 선택해서까지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종족을 보존하기 위함이라는 본능적인 이유라면 그보다 바보 같은 짓은 없다는 게 내 주장이지만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자, 이 베트남 여자 당첨! 이제 결혼.
하지만 그전에 베트남에 각종 증빙 서류들을 제출한 다음, 여자를 돈 주고 데려오는 까다로운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붓오빠가 서류를 작성하러 다니며 보이던 모습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갈 날을 받아놓은 소나 돼지 같았다.
어쨌거나 결혼은 쉽게 번복할 수 없는 오빠의 선택이었다.
꽤나 복잡한 결혼 절차를 밟은 뒤에 베트남 여자가 한국으
로 들어왔고 우리에게 다시 새언니가 생겼다.
수많은 새언니 후보들을 제치고 공식적으로 두 번째 새언
니가 된 베트남 여인의 첫인상은 크고 순진해 보이는 눈망 울에 작은 체구였다.
베트남 언니의 가족은 열두명도 넘는 대가족이었고 그 틈
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기아 수준으로 말라있었다. 웃으면 볼이 움푹 들어가고 잇몸 전체가 드러나 약간의 독특함을 느끼게 했지만 덕분에 고집이 세 보이거나 못돼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눈빛은 착해 보였다.
의붓오빠는 베트남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고 한국으로 돌
아왔다. 엄마는 그런 오빠를 보며 걱정 한가득이었다.
새언니가 오빠 과거를 알까 봐 걱정이다. ㅇㅇ이가 설마
말하진 않겠지만....
내 남편이 과거에 만난 여자가 한 트럭이라고 하면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니? 그나저나 애가 괜찮던데
오빠가 자꾸 외모를 따져서 문제야.
엄마의 생각도 그렇지만 내가 봐온 오빠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 몸매나 외모
에 집착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싶을 정도로 겉모습만
쫒고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오빠가 이상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를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자기 눈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 의붓오빠는 새언니의 외모나 기질을 트집 잡고 맘에 안 든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우리 앞에서도 '웃을 때 꼭 원숭이 같아. 어유 징그러워'
'애가 약간 모자란 거 같아. 말귀를 좀 못 알아먹어. 하는 식으로 베트남 언니의 흉을 봤다. 우리는 그런 오빠의 태
도가 맘에 안 들어서 못 들은 척하거나 핀잔을 주기도 했지
만 그런다고 반성할 오빠가 아니었다.
워낙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의붓오빠인지라 그러려
니 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나
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