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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n 28. 2021

엄마의 재혼으로 새 가족이 생기다.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3


 내가 7살, 여동생이 5살 때 엄마가 재혼했다.

 

 하루아침에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새아빠

생겼고 오빠에 언니까지 생겼다.

 의붓오빠랑 언니는 한참 질풍노도를 겪는 사춘기였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적응되지 않아 어리바리

했다.


 엄마는 그 이후로 조금씩 달라졌고 우리 세 모녀의

사이도 변해갔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게 7살과 5살 여자아이

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새 가족을 받아들일 때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결정한 대로 따르며 순응할 수밖에....


 오빠와 언니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갑자기

그들아빠가 이혼하고, 젊은 새엄마에 어린

여동생 둘까지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쉬웠을까?


 그 누구도 편하거나 좋기만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족으로 살아보려고 했지만 욕심이었을까,

 재혼가정이 평안하고 화목하게 살아간다는 건

불가에 가까운 일이었을까......





 오빠랑 언니는 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한 청소년기

 낯선 환경을 핑계로 비뚤어지고 싶은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한 환경이

이 힘들고 낯설었을 것이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거친 분이었다.

 대단히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으며 대부분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성격이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오빠랑 언니는 기를 못 펴고 움츠러들었고 금씩

쌓인 크고 작은 불만들을 다른 곳에다가 푸는 것

았다.


 오빠랑 언니는 부모님 눈을 피해서 어른들이

금지한 들을 보란 듯이 했고 나와 여동생에게

종종 심부름도 시켰다.


 언니는 부모님의 부재를 틈타, 집에 남자 친구를

불러들이기도 했고 담배도 피웠다.

 나는 어린 마음에 오빠랑 언니의 행동이 탐탁지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했었다.


 빠는 당연히 그런 오빠와 언니를 못마땅해하셨

기에 못을 하면 때리거나 거친 욕 하고 비난

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한 번은 언니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

아빠가 노발대발하며 언니 머리를 가위로 자르겠다

고 고함을 지르고 계셨다.

 그 무서운 상황에 나는 거실 한구석에 얼어붙어

가만히 있었고 엄마는 폭발할 것 같은 아빠를 뜯어

리며 내보냈다.


 "이것들이 다 뭐야, 학생 가방이야 이게?"

 누가 언니의 가방을 쏟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

않지만 가방 안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보며

엄마 차가운 목소리로 언니를 혼냈었다.





 나와 여동생의 기억 속에 엄마 그리 좋은 새엄마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웃어주거나 따뜻하게 말을

네는 빈도수 줄어들었다.


 엄마는 갈수록 표정이 사나워졌고 별일 아닌데도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동네가 떠나가라 큰소리

신세 한탄을 했다.


 " 도대체가 집안꼴이 이게 뭐야?! 이걸 설거지

라고 해놓은 거야? 내가 못살아!! 하루 종일 미친년

뛰듯 종종거리고 다녀도 일이 끝이 없어 끝이...!!

아이고 더러운 내 팔자! 빌어먹을 놈에 팔자아~!"


 " 야 이 못된 년들아 니들 방구석이 이게 뭐야!

빨리 치워놓지 못해? 에미는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와서도 집구석 치우느라 쎄가 빠지는데 딸이

는 것들은 뭐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엉?! "


 "내가 죽어버려야지. 내가 죽어야 니들이 엄마

죽었고 그때서야 정신 차릴 거야?! 이 괘씸한

것들!! 이래서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거야. 알아?"


 엄마는 마치 염불을 외는 스님처럼 언제나 비슷한

레퍼토리혼자 화를 뿜어내, 가까이 다가갈 수

정도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변해갔다.

 

 나는 한번 분노 섞인 넋두리를 시작하면 화가

가라앉을 까지 내지르는 엄마가 지긋지긋했었다.

 

 매사가 짜증, 분노로 점철된 엄마가 그때는 그저

두렵고 싫었다.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에 나는 어

도 했철이 없을 나이였으니까.





 화목한 가정을 이루자며 힘들게 시작한 재혼 가정

 다른 평범한 가정보다 헤쳐나가야 할 길이 멀었다.


훗날 엄마는 몇 번이고 이렇게 말했다.


 누가 재혼한다면 도시락 싸다니며 말릴거야,
절대로 하지말라고 할거야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가정은 괴로운 가시밭길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어두운 터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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