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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오월 Nov 24. 2023

엄마의 소망

그리고 나의 소망까지도

 엄마의 방 불은 아직 켜져 있다. 타다닥 타다닥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돋보기용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시며 일을 하고 계셨다. 집안에서도 목도리를 두르시며 약간 붉게 상기된 얼굴이 살짝 보였다. 선물로 온 차를 달여 마시는 중인지 컵에서는 연기가 폴폴, 아마 꽃 차, 꽃 향을 낼 것이다. 일이 잘 되지 않는지 한숨소리도 이따금씩 들려왔다. 나는 이제 자러 가기 위해 엄마의 방문턱을 넘어 엄마를 두 팔로 안고 굿나잇 인사를 나눴다. 

 우리 엄마는 55세이시다. 내 나이는 26살. 엄마는 쉬어도 될 연세이시고 나는 일해야 할 나이인데 뭔가 뒤바뀐 느낌이다. 뭔가 잘못됐다. 물론 내가 아직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공부를 더 해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내 나이가 하나씩 먹을 때 엄마의 주름살은 서너 개씩 느는 것 같다. 죄송스러워진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밤이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말씀하시길 “나는 일복이 많은 것 같아. 무작위로 일할 사람을 뽑으면 꼭 내가 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도 꼭 힘든 애가 한 명 우리 반에 있어서 나를 애먹이더라고”하고. ‘뭐가 씌인 것은 아닌지 점을 봐야 하나’하고 기독교인인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엄마를 이리도 힘들게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한편, 평화롭던 날이 이어지다가 내게 문제가 생겼다. 날이 급격히 추워지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리면서 발생한 일인데, 그건 바로 나의 하루가 가면 갈수록 비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이었다. 밖은 입김이 나올 만큼 춥고 모두 오들오들 떨며 옷을 여미며 다녔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면서 수면양은 10시간을 넘어섰고 나의 하루가 약간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참고로 나는 도미노 같은 몸의 경향성이 있다. 즉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도미노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요즈음 시작된 것이다. 환절기마다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잘 극복했는데, 올 겨울은 아니다. 너무 추운 것만 같이 느껴진다. 꽁꽁 싸매어도 이 추위는 너무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온몸이 움츠려 들고 계속 따뜻한 물을 마셔주어야만 한다. 내가 과연 이 추위를 이길 수 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오늘 난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던 스쿼시 운동에 결석했다. 사실 운동하는 인원이 많이 줄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아무튼 일주일에 고작 2번 하는 운동을 빠졌다니 살짝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일 있는 오전 일정은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에 잠겼다. ‘내일도 못 일어나면..’ 이렇게까지 생각이 이어지는 건 아무래도 대학생 시절 하루 학교 결석했다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안 가버렸던 나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그런 나쁜 버릇, 습관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엄마가 많이 실망하시고 속상해하셨다. 나는 대학생 때 부모 속을 가장 많이 썩였던 것 같다. 가장 착하고 예쁜 딸이었던 난 그 당시 그런 일들로 엄마께 가장 많은 실망감을 주었다. 그 시기 엄마는 엄마의 간절함을 담아 '108배' 절하기도 할 만큼 엄마의 마음이 많이 괴로우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애를 썩히는 딸로부터 느껴지는 불안, 초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엄마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삶에 늘 최선을 다하신다. 아이들 끼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꼬박꼬박 아침에 아침 메뉴를 만들고 출근하셨고, 집안일을 꼼꼼히, 또 부단히 열심히 하셨다. 어떤 아픔이 오면 집안일을 함으로써 극복하려 애쓰셨다. 나도 그 당시 아침이 되면 내가 살았던 동네 청파구에서 수초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슬쩍 가본 적이 많다. 내 마음도 많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드니 저절로 찾게 되었는데, 차마 안을 들어가 보진 못하고 교회 겉만 보고 오는 하루가 여러 날 이어졌다. 나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저항의, 소리 없는 외침이었고 무언의 표현이었다. 내 삶이 싫었고 불만스러웠다.

 그렇지만 한 해, 한 해 가면서 나는 조금씩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단단해져 갔던 것 같다. 이제는 출석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그리고 도미노 같았던 삶이 아닌 넘어져도 다시 나의 도미노 한 개를, 그러니까 하루를 다시 세우려고 힘쓴다. 주변의 변화도 있었다. 나를 올바르게 살게 하는, 믿음을 길러주는 새 교회를 찾고 다시 교회를 나가면서 나는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곳에서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으로부터 더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충분히 따듯한 사람으로 컸고 이제는 다 큰 성인으로서 내가 사랑을 주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즈음 날이 너무 추워 혹독한 계절이다. 그 계절이 따스한 봄을 데려오듯 엄마의 삶도, 나의 삶도 환하게 빛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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