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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Oct 23. 2020

나좀 그만 불러줄래 플리~즈

엄마!

맘!

어엄~~~마! 

여보!

마미!

아..여보오!! 


대충 이런 종류의 외침이 하루종일 들려온다. 상황과 다급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모든 사안은 “엄마” 소리와 함께 수면위로 떠오른다. 가끔은 하루종일 “엄마” 소리에 대답하다가 온몸의 진이 다 빠지겠다는 생각도 한다. 또 한편 생각하면 “엄마”를 안부르면 누굴 부르겠냐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잠깐! 왜 아빠는 안부르냐고. 그리고 그 아빠까지 왜 나를 불러대냐고!] 


실로 다양한 일로 나를 찾는다. 생존과 관련된 일로부터, 예컨데

 

엄마 배고파

엄마 점심은 뭐 먹을거야

엄마 과자봉지좀 열어줘

엄마 인터넷 안돼

엄마 오늘 뭐입어

엄마 팬티 어딨어

엄마 화장실 휴지 다 떨어졌어


로 시작해서 


스스로 충분히 할수 있는 일을 구태여 “엄마”를 불러 요청하거나 

때로는 그저 습관처럼 말을 시작할때 “엄마”를 부른다거나 

가끔은 아빠를 쳐다보고도 말이 헛나와 “엄마”라고 부른다거나 

혼잣말을 할때도 “엄마”는 자주 소환된다. 

“오늘 춥겠네, 두꺼운 바지 입어야 겠다, 엄마!” 

나에게 하는 소리인줄 알고 대답하려고 돌아보면 아니다. 그냥 혼자 말씀중. 




식사 시간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산발적으로 대화가 오고가야 하는데, 대개 대화는 


엄마(나) : 딸1 

엄마 : 딸2 

엄마 : 남편 

의 세 축으로 움직인다.


그러다보니 모두들 나만 바라보고 본인들의 얘기를 하며 

나는 그 부름에 대답해주고 나면 어느새 나혼자 식어버린 밥과 국을 먹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나와 딸1 이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딸2가 불쑥 끼어들어 나를 불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하고, 

본인의 세계에 빠져있던 남편이 딸 2와 대답하고 있는 나를 부르며 아침에 있었던 미팅 얘길 시작한다. 가끔은 나를 셋으로 나눠서, 1/3은 딸11/3은 딸21/3은 남편과 거의 동시에 대화를 하는 신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난 각 화자의 질문과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휴지 그 옆에 있잖아" (to 딸 1) +  "그 사람 미팅에 자꾸 늦고 그러냐 진짜" (to 남편) + "그릇 줘 엄마가 두부 잘라줄게(to 딸 2) 를 동시에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가다니, 나에게는 나도 모르던 신기한 재주가 장착되어 있었다고 위안하지만, 남들이 보기라도 했다면 정신줄 놓은 여자처럼 보일게 분명하다. 


중구난방으로 떠들고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리는게 하도 정신이 없어서, 말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고 차례가 올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더니, 셋다 할말을 억지로 참으며 손을 들고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설상가상이다. [이게 뭐하자는 거야 진짜] 


더 이상한건, 딸1이 아빠에게 물어볼말을 나를 불러서 묻는다. 즉, 딸1이 아빠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엄마(나)에게 전달되고 - 엄마는 그 질문을 아빠에게 하고 - 아빠는 질문의 대답을 엄마에게 한다음 - 엄마는 그 대답을 다시 딸 1에게 전달한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아빠도 꽤 자주 딸들에게 해야할 말을 중간에 있는 엄마에게 전달한다. 마치 내가 숙주, 전도체, 전화기 대체 뭐란 말인가. 


아주 가끔 애들이 불러도 “잘 안들리는” 아빠와, 집중력이 새끼손가락 첫번째마디만한 아이들은 서로를 찾아 부르기도 하는데, 이럴땐 대개 서로의 부름을 잘 못알아듣는 사단이 벌어진다. 그럴때면 멀찌감치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엄마”가 다시 끼어들어 


"야야! 동생이 너 부르잖아." 

"여보 애들이 부르잖아." 

"너 언니한테 대답해야지." 해줘야 그나마 대화가 재개된다. 


나좀 그만 불러 줄래 플리즈?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부르는 “엄마” “여보”는 밤에 잠들때까지 이어진다. 잠자는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려고 가면, 쿨쿨 자던아이가 “음~~마!” 하며 잠꼬대를 한다. [아 진짜, 자면서도 부르니] 새벽에 무서운 꿈이라도 꾸면 “엄마” 하고 나를 부르니, 실로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하루종일 나를 부른다. 


성인이자 내가 그의 “엄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 역시 나를 부르는건 애들 못지 않다.  뭐 하나 찾으려면 기본으로 서너번은 나를 부르고, 코 앞에 두고도 못찾아 결국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또는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나를 행차시킨다. 결혼전에는 꽤 과묵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 남자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하루종일 나에게 할 말이 너무 많다. 일 얘기, 정원 얘기, 나무 얘기, 화분 얘기, 동료 얘기 … 대통령에 기후변화 얘기까지. 이야기 어미마다 혹은 말미마다, 아니 그것도 아니면 중간 중간에 나의 집중력을 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여보”를 부른다. 


학교와 일터로 다 나가고 혼자 가만히 집에 있었을 때에도 가끔 집 어디선가 “엄마”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혼자 운전하고 갈때도 뒤에서 갑자기 “엄마” 하는것 같았다. 2층에 있다가도 지하에서 부르는 아이들 소리에는 기가 막히게 반응한다. 이건 청력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아니 어쩌면 초능력에 가까운것 같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세사람에게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열댓개 정도의 질문들의 '질문자' '질문내용' '대답' '긴급함' '중요성' 등을 핀셋을 들고 개구리 해부하듯 세세하게 해체하여, 당사자에게 정확한 대답을 시기적절하게 해주니, 내 스스로에게 감탄해 마지 않다. 


친정엄마에게 하소연하니 쌤통이라는 듯이 깔깔깔 웃으며 

“너랑 니동생, 니 아빠가 얼마나 나를 불러댔는지 알아? 너도 똑 같이 당하는구나!” 했다. 거기다 엄마가 한마디 더 거든다. “나는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큰아빠까지 나를 불러댔었어!” 시집살이 했던 엄마를 괜히 건드려서 본전도 못찾았다. [그래 이게 업보였구나 업보였어]




사실 생각해보면,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엄마 소리를 난 참 좋아했었다. 말을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전에 나를 보고 “마” “음마” 해가며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이 "엄마" 소리는 듣기 행복하다 ["여보"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약 70%만 들어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고 딱 찰랑찰랑하게 만족감을 느낄것 같은데, 그 한계치를 자주 넘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어느 순간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은 때가 도래하면, 


“아 나좀 그만 불러!!!!!!”

“너네 이제 나 부를때마다 돈내!!!!!”  꽤액 소리치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며 부르는 “엄마” 

학교 다녀와서 나에게 와락 안기며 부르는 “엄마” 

열이 높아 아파 누워 있으며 부르는 “엄마” 

놀이터에서 놀다가 콩 하고 넘어져서 으앙 울음이 터지며 부르는 “엄마” 

내 목을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부르는 “엄마” 


생각해보니 이제 “엄마”소리가 없으면 못살것 같기도 하다. 

아니, "엄마"가 들리지 않는 세상은 상상도 못하겠다. 


내 발 끝에 턱을 올리고 누워 있는 내 반려견 까지 나를 부른다. 

끙끙 …. (엄마! 밥줘)”

멍멍 ….. (엄마! 놀자)”


너까지 .... 내가 못살아. 




커버이미지 Photo by Patrick Fo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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