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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02. 2020

너의 딸기향나는 입으로

유난히 몸이 좋지 않던 날이다. 

병원 약속이 있던 날이다. 

오늘인줄 알고 갔던 병원 약속이 내일이어서 허탕을 쳤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가지의 변명을 써본다. 그 속에서 혹시라도 내 행동을 정당하게 할수 있는 근거를 찾을수 있을까 해서다. 그러나, 머리에 떠오르는 그럴싸한 변명들은 전혀 변명이 될수 없음을 이내 깨닫고 절망한다. 유난히 그런날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부족한 탓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하루종일 몸이 안좋은데 나가야할 일들이 몇가지 있었고, 여느 주부가 그렇듯 저녁시간이면 마음이 급한데 어중간하게 잡혀있던 두번째 병원 약속때문에 집을 나섰지만, 병원에 도착해서야 약속이 잘못되었는지 알았다. 결국 허탕을 치고 그 길을 그대로 운전해서 돌아오며 화가 나면서도, 저녁은 뭘 먹나, 남편이 준비를 하고 있을까, 집에 뭐가 있더라를 꾸역꾸역 생각해냈다.


집에 막 들어섰는데, 여섯살 아홉살 두 아이가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잔뜩 꺼내다가 아일랜드에 올려두고, 도마와 칼을 꺼내고, 커다란 샐러드볼을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이들 딴에는 내가 없는동안 만들려고 했던것 같은데, 병원 약속이 잘못되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돌아온 엄마덕분에 당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저녁준비를 남편이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머리속에 저녁으로 뭘 먹어야할지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마구잡이로 꺼내놓은 음식들, 물에 씻지도 않은 야채들을 보니 ‘아, 뭘하겠다고 그래. 하지마’. 해버리고 말았다. 엄마 도와주려고 했다며 머쓱해하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도와줄일이 있고 그렇지 않을 일이 있지. 도와주고 싶어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걸 해줘야지 너희 맘대로 도와주는걸 다 좋아하는건 아니야. 이건 너네가 할일이 아니고.” 왜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는지 얘길하는 중에도 내가 너무 싫었지만, 머리와 입이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것처럼 나는 입으로 냉정한 말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평소에는 도와준다고 하면 반색을 하고, 고맙다고 말하던 엄마였는데,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민망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의 행동이라는게 어쩔때는 종잡을수 없는것 같다고 생각할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고나니 아이들 눈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이건 누가 뭐래도 백퍼센트 나의 잘못인것 같았다. 아이들이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종알거리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앉아서 내 눈치를 보는것 같아 더 마음이 안좋았다. “엄마가 오늘 여러가지로 좀 안좋아. 몸도 안좋고, 아침부터 머리도 하루종일 아팠고, 병원에 가느라 왔다 갔다했고 저녁 약속은 게다가 갑자기 그쪽 실수로 캔슬되어서 화도 나고 기분도 나빠서 그런가봐.”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잘못했다면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들에게 그때그때 바로 얘기하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했다. 아이들은 알아듣는지 아닌지 고개를 그냥 힘없이 끄덕였다. 그동안 야채를 씻어낸 나는 그제서야 아이들앞에 내밀며 입에 넣을수 있는 작은 크기로 잘라달라고 부탁했더니, 속도 없는 아이들은 금새 신이 나서 작은 칼을 들고 쏭당쏭당 야채들을 잘랐다. 


어찌어찌 어색한 분위기는 끝나고 다시 화기애애하게 식사도 하고 잠들 준비도 했다. 큰애 작은애 침대에 앉아서 자기전에 다시한번 말했다. 오늘 엄마가 많이 미안했다고, 오늘일은 엄마가 잘못한것 같다고. 남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큰애는 내 말끝에, 자기가 오늘 속상해서 울뻔했다고 말하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나에게 항상 다정한 둘째는, 우리가 아무거나 냉장고에서 꺼낸게 아니라 언니랑 서로 얘기해서 필요한것만 꺼낸거였다고 얘기해서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몇시간후에 잠을 자러 내 방에 들어갔는데, 큰애가 써내려간 편지가 세장이나 침대위에 있었다. 오늘 자기가 속상했던 말을 더 할게 있어서 그랬나 하며 읽어내려갔다. 세상에 자기만 중간에 두고 그게 엄마든 아빠든 별로 상관안한다고 생각했던 큰애는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가 별로 기분이 안좋은것 같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렇지만 엄마가 잘못한건 아니라고. 누구나 좋은 날이 있고 슬픈날이 있다고. 오늘은 엄마가 몸도 안좋고 기분도 안좋아서 그런거라고. 엄마가 우리를 보고 기뻐하지 않고 화가 나고 큰소리로 야단친것 같아 속상했지만 그것도 엄마 잘못은 아니라고. 말했다. … 이어서, 


“엄마는 자주 행복해보이고, 가끔은 기분이 안좋아 보이기도 해. 그럴때는 엄마가 외로운 한마리 생쥐같아. 나도 가끔 그래. 그러니까 오늘 일은 엄마 탓은 하지 않을게. 엄마가 화난 얼굴로 우리에게 큰소리 낸것도 괜찮아. 오늘의 엄마 상태라면 이해할수 있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방울씩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이 아니라 뺨을 흠뻑 적시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가끔 기분이 안좋고,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또 가끔 냉정하기도 한 엄마를 한발자국 옆에서 바라보면서, 아이는 내가 웅크리고 눈으로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외롭고 작은 생쥐한마리처럼 보였구나. 아이가 쓴 “a lonely mouse”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답고 만들어낸 표현일지 정확하게 알 도리는 없었지만, 웬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가 본 내 모습이 뭐였을지 내가 어떻게 기분과 생각이었을때 그렇게 보였을지 알것 같았다. 그 단어는 전혀 기쁘거나 기분좋은 말이 아니었지만, 난 외로운 생쥐 한마리라는 그 말이 맘에 들었다. 내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그런 모습이었어. 


가끔이더라도 자기들에게 친절하지 않고 화를 섞어서 얘길하는 엄마가, 냉정하고 어쩔때는 무섭게 다그치기도 하는 엄마가 잘못된게 아니라고 얘기해줄지는 몰랐다. 그냥 엄마가 그래서 슬펐다, 속상했다, 엄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써내려갔을줄 알았다. 누구가 그럴수 있고, 엄마도 그러는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내가 엄마였어도 오늘 많이 힘들었을거라고, 나도 가끔 그럴때가 있다고 얘기해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생각을 해주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고, 아이는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타입이라 서운할때가 많았었다. 하지만, 오늘 내보인 아이의 속내는 전혀 다른 사람같았다. 나를 탓하지 않고 위로하고 끌어안아주고 있었다. 이건 언제나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잘못해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엄마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꼭 안아줬던건 항상 나였다. 그 안에 안겨서 때로는 속상해서 때로는 화가나서 때로는 미안해서 울고 있는 아이를 느끼면서, 아이에게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로 인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다. 우리의 관계는 늘 나는 위로를 주고, 너는 위로를 받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내 엄마에게 아직도 위로를 주지는 못하고 받기만 하는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이가 이번에 손을 내밀었다. 그 편지는 마치, 나를 꼭 끌어안으며 ‘괜찮아, 그럴수 있어, 엄마가 아무리 잘못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엄마편이야’라고 말해주는것 같았다. 말을 하면 달콤한 딸기향기가 나는, 너무 고운 내 아이가 말이다. 




커버이미지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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