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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28. 2020

엄마를 떠올리고 의문의 1패  

아이들 키우면 늘 바쁘고 시간이 없다니까, 하루 스물네시간이 언제 어떻게 사려져버렸는지 허무해도 그러려니 했다. 나만 그러겠어 어디, 다들 그렇다는데. 그 와중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하는 엄마들도 있고, 집에서 일하는 엄마들도 있고, 전업주부도 있겠지만, 아이가 어릴땐 그 누구할것 없이 바쁜건 다 마찬가지이다. 나름의 상황에 따라 짊어져야 할 일들의 종류가 조금 다를뿐이지만, 결론은 아이들 키우는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참 티나지 않는 일들이기도 하다. 


학령이 이전의 아이들을 키우는건 정말 전쟁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이다. 한살과 네살이었던 딸 둘을 키울때 정말 하루종일 앉을 틈이 없었다. 주중에는 주중이라 바빴고 주말에는 또 주말이라 바빴다. 남편이 도와주(기만 하)고, 주중 3일은 큰 아이가 시간정도 데이케어에 다녔는데도 그랬다. 


뭐 하나 제대로 된 반찬을 해서 밥을 먹는것도 아니고 사먹는 날이 많은데도 그랬다. 남편 셔츠 한번 다려입힌적 없었고, 대신 세탁기에서 꺼낸 셔츠를 온 힘을 다해 탁탁 털어 주름이 안지게 말려 입는 것으로 대신하는데도 바빴다. 도시락 반찬으로 거의 전날 먹었던 반찬을 넣어주는게 다 인데도 그랬다. 아침엔 빵이나 과일만 차려내는데도 바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영화는 고사하고 뉴스 하나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걸 하는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큰 애는 머리를 산발을 하고 있고, 작은 애 코에는 콧물이 눌러붙어 있었다. 


내가 뭔가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적지 않은 시간동안 이렇게 종종거리며 사는데 바쁘기만 할수가 있나 싶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걸까 싶다가, 내가 비교할수 있는 유일한 한 여인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여인이 넘사벽이고 엄친딸인거라. 


바로 내 엄마. 


떠올려보면 내 엄마는 여유로웠다. 갑자기 점심으로 김밥을 쓱쓱 말아주기도 하고 (나에게 김밥이란 약 삼일전부터 장보고 심호흡을 해야할 음식이며, 이 동네에서는 그 흔한 김밥을 사먹을수도 없단 말이죠), 계절이 바뀌면 온 집안 커튼을 떼어내어 빨아 새로 달았다. 예전엔 커튼에 달린 핀을 하나하나 끼고 빼내야 했으니 그것도 일이었다. 등공예, 지점토 공예, 꽃꽂이나 서예 등 취미생활도 빠지지 않았고, 테니스나 볼링등 운동도 쉬지 않았다. 겨울마다 온가족 목도리와 장갑에 조끼를 털실로 짜줬고, 그러고도 틈틈이 옷도 만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불호청을 뜯어서 빨고 이불은 햇살에 널어두었다가 저녁에 거둬들여 큰 대바늘로 꿰매던 기억도 난다.


어디 그뿐일까. 겨울에는 두세종류의 김장은 물론이고 병마다 각종 저장식품이 가득했다. 식탁은 갖가지 마른반찬으로 풍요로웠고 도시락반찬은 늘 정성이 가득했다. 소풍이라도 가는 날에는 알록달록 야채들로 색을 낸 김밥이 화려했었다. 계절이 바뀌면 장롱은 이쪽으로 피아노를 저쪽으로 밀어가며 방의 구조를 바꿔놓기도 했다. 아빠 와이셔츠는 늘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고, 구두는 언제나 반짝거렸다.


엄마는 어디서 그런 시간을 만든걸까. 스물 네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쓴걸까. 나는 늘 허덕거리면서 하루세번 먹기도 바쁘다고 투정인데 말이다. 그런 엄마도 나이가 많아지니, 젊은 날이 덧 없이 흘러간것같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것 마냥 허무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나중에 내 젊은 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시선을 내 눈앞으로 다시 가져온다. 뭐 조금 정신없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나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 의문의 1패를 한 기분. 이건 다 비교대상이 너무 큰 산이라, 하필 그 대상이 내 엄마라 생긴 일이다. 나에겐 영원히 넘볼수 없는 존재.   





커버이미지 by Eduard Militar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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