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것 못 먹을까봐 군것질 거리를 잔뜩 보내주던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읽고 싶은 책 못 읽고 살까봐 일년에 몇 번씩 책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두 친구 모두 나에겐 은인이다.
어느곳이든 내 허기를 채워주는 일에 신경을 써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주문해서 읽던 습관이 없고,
서점에 가서 눈에 들어오던 책을 집어 들어 사오곤 했던 버릇이 남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저장해 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소환하여
장바구니에 이것을 넣었다 저것을 뺏다 하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차를 타고 서점에 다녀오는 일보다 더 쉬운일이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화장지나 세탁세제를 주문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렇다.
그러나 한국책을 둘러볼수 있는 서점이 없는 곳에 사는 나로선 별다른 방책이 없다.
배송비 무료를 위해 일정금액이상 책을 결제하려고
장바구니에 책을 넣었다 뺏다를 계속 해야할 뿐이다.
책을 가끔 보내준다던 친구는 한번에 서너권의 책을 보내주는데,
그 중 절반은 자기가 읽었던 책을 보내준다.
책 여기저기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데
별다른 메세지나 코멘트가 있는건 아니지만
내가 한번 더 눈여겨 보길 권하는 문장 곁에 붙어 있다.
무심결에 읽던 책장에서 갑작스레 마음이 뭉클하거나
심호흡을 한번 하며 읽었던 글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이 자주 있는데,
그 곳에는 어김없이 친구가 붙여둔 포스트잇이 "여기봐" 하듯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포스트잇이 없는 곳에서도 뭉클한 순간이 자주 있는데
내가 그 친구보다 뭘 더 많이 느껴서가 아니라
고르고 골라 포스트잇을 붙이느라 애썼을 거란 생각이 앞선다.
책장을 넘겼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서 포스트잇을 붙일까 고민했을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친구와 긴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가까이 살때,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책을 읽고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나눈적이 있었던가?
같이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러 다닌적은 있었어도
같이 앉아서 시간을 부러 내어 함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얘기했던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대의 우리는 그렇지 않더라도 자주 만나 이야기할수 있었지만
40대의 우리는 조금 멀리서, 서로 책을 나누고, 책에서 얻은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서로에게 넌지시 건넨다.
친구에게서 오는 고마운 마음이다.
그 마음은 너무 따뜻해서 그 온기로 보고싶은 마음을 대신한다.
보고싶다, 보고 싶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사이가 있다.
부모자식간이 그렇고, 좋은 친구에게 그렇다.
보고싶다는 말을 아끼지 말고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 지 좀 되었다.
문자로 보고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건 그냥 가볍게 보내고 마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 담아두기엔 너무 커서 참았다 참았다 하는 말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엄마가 보내는 짧은 "보고싶어" 라는 문자 메세지에
친구가 보내는 하트와 느낌표가 덕지덕지 붙은 "사랑해!!!"라는 문자메세지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동시에 저 몸 안의 어딘가에서 뜨거운 물이 흐르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것,
눈가는 촉촉해지는데 목은 건조해지는 기분이 드는것,
서로를 보고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 기분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