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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30. 2021

균형

8월 중순이후, 그러니까 새 직장에 출근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있는 평일 아침날이었다.


예전에 그랬던것 처럼, 아침에 일어나 과일을 깎고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빵이 다 구워졌을때 아이들을 깨우러 올라갔다.

아이들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 안쓰러워

같이 옆에 가만히 누워서 잠을 깨워 데리고 내려왔다.


과일 한 두조각 더 먹으라고, 우유도 끝까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집에서 가져갈 점심을 챙겨주고 

아이들 아빠가 가져갈 점심도 챙기고

커피까지 준비되니 남편도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내려온다. 


아침은 제법 추워서 오늘은 두꺼운 외투를 꺼내주었다.

외투에 모자에 장갑까지 끼우고서야 마음이 놓여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 버스가 오는 곳까지 걸었다.

종알종알 이야기 하는 둘째의 얘기를 들으면서 

큰애와 나는 깔깔 웃었다. 


버스가 올때까지 함께 기다리다가 

버스가 왔을때 꼭 안아주고 버스를 태워 보냈다.

버스운전사를 이번 학기에 처음 보았다.

이따가 집에 돌아올때도 기다리고 있을거냐고 묻는 둘째의 말에

그럴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길하며 보냈다. 

 

지금까지 쓴 모든 일이, 내가 출근한 후에 아이들 둘이서 해야했던 일이다.

출근 전에 아침준비와 도시락을 챙겨두고 가고, 출근이 늦은 아빠가 집에 있지만, 

아이들끼리 일어나서, 씻고 옷을입고, 밥을먹고, 가방을 챙겨, 버스를 타러가고 ..

아이들도 힘들었겠다.


아직도 이런 모든 것에 엄마손이 필요한데 

큰애는 엄마자리를 대신한다고 엄마가 채근하듯이 동생을 채근했다.

빨리해, 빨리 먹어, 빨리 입어, 늦는단 말이야 ..

동생은 더더욱 느린 손을 모든 것을 해내느라, 거기에 언니의 잔소리까지 듣느라

아침마다 마음이 상했다. 

아직 일곱살도 안된 둘째는 어느날 밤 나에게 

"나는 busy 엄마랑 working 엄마는 싫고, normal 엄마가 좋아. 엄마가 깨워주고 버스 기다려주고" 라고 말했다.

아이의 표현은 재미있었지만, 그냥 웃고 넘기기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힘들었겠다. 


남편도 힘들었겠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마음이 이런거였겠구나. 

주말에는 운전도 하기 싫은 마음이 이런거였겠구나 .

집에 돌아오면 모든게 정돈되어있고 안락했으면 하는 마음이 이런거였겠구나. 

나에게 하는 아무리 작은 잔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런거였겠구나. 


지난 몇달동안 나에게 생긴 변화에 적응하느라 

가족 모두가 힘이 들었고 또 서로가 그간 힘들었겠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는 여전히 아침마다 일찍 출근하는 엄마가 못마땅하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하루의 루틴을 받아들이고 언니를 의지하며 지낸다. 


매일 반복되는것 같은 하루가 숨막혔던때가 있었다.

언제까지 같은 아침을 반복해야 하나 갑갑했고

내가 완벽히 준비해 놓은 모든 것에 가만히 안착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몸이 안좋아 몇 시간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집안일을 보면서,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학교로 직장으로 휑하니 집을 떠나면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집안을 닦고 가꾸었다.

조금이라도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집에 있는 나의 가치가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 처럼 불안했다.

바닥에 먼지 한톨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리창에 얼룩 하나도 지나칠수 없었다.

내 얼굴같고 내 성적표 같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집착했다. 


난 남들이 보기에 무던하게 아이들도 잘 키우고 집안일도 야무지게 해내는 엄마였지만 

어딘가 균형이 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과 가족으로 기울라치면 가슴 저 안에 있는 자아가 요동쳤고

나에게 기울라치면 자신감은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두가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서글펐다.

글을 쓰는 일은 그 와중에 나에겐 작은 해방이었지만,

집이 깨끗하고 저녁이 준비되며 화장실에 좋은 향기가 난 후에야 글을 쓸수 있었으니,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직장생활로 나를 필요로 했던 가족들은 혼돈스럽고, 

나 역시 오랫동안 쉬었던 사회생활 감각을 회복하느라 매일매일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아직도 내가 그 균형을 잘 잡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 3의 추를 하나 더 올려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적당한 설명이 될까? 

그리고 그 제 3의 추 덕분에, 세상이 무너질것만 같이 조심조심 부여잡고 있던 다른 것들에 

조금 느슨해지고 유연해졌다. 


마룻바닥은 윤이 나지 않고, 설거지거리는 가끔 잔뜩 쌓여 있으며, 

물을 안준 화분은 마른잎을 달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끔 짝이 맞지 않은 장갑을 끼고 학교에 간다거나, 

사인을 받아가야 할 종이를 며칠 늦게 내는 일도 많아졌다. 


모든게 제자리에서 반짝거리지 않으면 그게 꼭 나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 안달했는데, 

때로는 힘이 닿지 못해서, 다른 일이 바빠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할수 없는, 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는 중이다. 

윤이 나지 않는 바닥이나 먼지가 있는 창틀은 내가 아니라는것도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날은 피곤해서 아이들 잠자리를 봐주지도 못하고 먼저 침대에 골아떨어지기도 했다. 

아이들 이닦고 잠옷입히고 책을 읽어주지 않고 재우면 큰일날것 처럼 집착했던때가 있었다. 

이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먼저 위하는 법도 배워가는 중이다. 


앞으로는 일을 계속 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느꼈던 불균형은 좀 덜할것 같다. 

한쪽 발을 들면 이쪽으로, 한쪽 팔을 내리면 저쪽으로 기우는 내가 아니라 

다른 생각과 방법으로 균형의 추를 이리 저리 옮겨보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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