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눈을 맞으며 아이들과 함께 학교 버스를 태워주러 나갔다 돌아오니 커피가 식어버렸다.
따끈하게 커피를 다시 데워서 책상에 앉았다.
음악을 틀까, 일을 좀 할까, 책을 좀 읽을까 하며 책상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색연필을 죄다 꺼내어 책상위에 늘어놓고 칼로 사각사각 색연필을 깎았다.
음악도 틀지 않았더니 간간히 들리는 차소리 외에는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30분이 넘도록 색연필을 깎으면서 되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가끔은 타이밍을 잘못 맞춰 꺼내든 책으로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마냥 얽히기도 하는데
연필깎기는 머리를 비워내는데 꽤 괜찮은 소일거리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연필깎기는 늘 아빠의 몫이었다.
집에 반짝반짝하는 기차모양의 최신 연필깎기가 있었는데도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빠는 나와 동생의 필통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거실 한 쪽에서 등을 동그랗게 만들고 앉아 신문을 펴 놓고
검은색 플라스틱 뚜껑이 있는 면도칼로 연필을 깎아주셨다.
그땐 아빠가 일요일 저녁 TV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쉴 시간에
연필깎기로 5초면 윙 소리를 내며 깎을 연필 수십자루를 시간을 내어 깎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빠에게도 꼭 필요했을 쉬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머리를 비워내고, 주말을 정리하고, 아이들 물건을 만지면서
또 고단할 다음 한주를 시작하기 전 일요일 저녁에
아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신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난 아빠가 깎아주는 연필이 좋았다.
연필깎기에서 금새 나온 연필은 매끈하고 아주 날카로운 연필심이 매력적이었지만,
몇번 글씨를 쓰고 나면 금세 연필심이 닳아버렸다.
아빠가 깎아준 연필심은 어쩐지 묵직한 느낌이 있어서
오랫동안 써도 금세 닳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깎아준 연필로 글씨를 쓰면 아빠 손을 잡고 있는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 시간이 아빠의 휴식 시간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아빠가 깎아준 연필을 가득 필통에 채워서 월요일에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면서
조금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그 꼬마가 몇십년의 세월을 지나서
아빠처럼 연필을 깎으며 나만의 휴식을 또 찾고 있는 중이다.
내일이면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고,
성탄과 생일, 연말, 뉴이어 .. 아마 방학 2주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겠지만
난 지난 9월부터 쉬지 않고 달렸던 4개월치 휴식을 색연필을 깎는 30분으로 다 한것 같다.
그뿐 아니라 방학이 끝나고 난 후, 앞으로 바쁘고 고될 몇 달의 다음학기를 버틸 힘도
충분히 얻은 것 같다.
그 몇달이 지난 다음에 다시금 뭉툭해졌을 색연필을
입은 다물고 귀는 열고
지금처럼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풍경대신,
온통 초록색이 가득한 풍경을 앞에 앉자 색연필을 깎아야지.
그리고 가끔 설거지를 모른척 하고 식탁 한 모퉁이에서 애들 연필을 깎아주는
남편의 휴식도 존중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