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살며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제이 Aug 13. 2015

위로

위로하는자와 위로받는자

누구든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나 역시 한때 좌절감이 꽤 컸던 때가 있었다. 자력으로 회복하기에 버겁다는 생각이 들만큼, 상황도 내편이 아니었고, 그 상황을 극복할만큼의 자신감과 결단력도 부족했다. 천가지의 해결방안을 생각해봐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렇다고 모든것을 다 놓지도 못하는 비겁함이 가득했다. 그때 많은 사람으로부터 “위로” 라는 것을 받았다.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낼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 난 참 럭키한 사람이었다. 안지 얼마 안되는 사람에게부터, 나와 십년지기 이십년지기 친구, 그리고 가족들에게까지 말이다.


그 위로들 중에 대부분은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내 상황을 속속들이 알든 그렇지 않든간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내 상황이 얼마나 miserable 한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결국 잘 될거라는 위로, 그리고 모든게 괜찮아 질거라는 위로였다. 당장에 붙잡을수 있는 지푸라기가 없는데도, “그래도 넌 물에 빠지지는 않을거야” 라는 위로. 한 두해를 바라볼수 없는데도, “그래도 결국에는 잘될거야” 라는 위로. 당장 숨을 쉴수 없는데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거야” 라는 위로들. 그 잘 될거야라는 위로들에 난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것 같았다. 어떻게 곧 괜찮아질거라고 얘기할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게 다 잘될거라고 얘기할수 있을까, 왜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한걸까, 나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얘기가 뭘까, 어쩌면 이렇게 무책임할수 있을까, 이게 아니면 저걸하면된다고 어쩌면 저렇게 쉽게 얘기할까, 그래도 넌 다른걸 가졌다고 저렇게 얘기할수 있을까. 위로는 결국 원망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의 위로가 있었다. 위로라기 보다는 이해였다. 그리고 그 이해는 완전하지 못한 이해임을 전제했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제공했다. 몇가지 요소들을 같이 따져봤고, 그중 어떤것도 지금 당장 working 하지 못한다는데 이해를 함께 했다. 힘빠지긴 하지만, 상황의 긍정성이 없다는데 동의했고, 때문에 내 상황이 곧 좋아지지도 못할것이며 시간이 해결해주지도 못한다는데 이해를 같이 했다. 그래서 결론은 꽤 비관적이었고,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난 그 누구의 위로보다 감사했다. 그럭저럭 그 고비를 넘는데, 결국 좋아질거라는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비판과 힐난이 차라리 속쉬원했다. 아팠지만, 그로인해 상처를 바로 바라볼수 있었다. 우울했지만,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위로에 늘 감사한다. 앞으로 또 위기가 오더라도, 무책임한 긍정성은 사양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남에게 주는 위로에 나도 늘 이 점을 명심하겠노라고 생각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잘될거야, 뭐 여튼, 언젠가는” 이라고 비겁하게 말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몇번이나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몇번은 제법 용기를 내어보기도 했으나,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바라는 위로의 종류는 많이 달랐다. 그저, 덮어놓고 “잘될거야”라는 위로를 절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에게 나의 날선 비판과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나의 동조는, 영 번지수를 잘못찾은 위로였다. 그들에게 나의 위로는 때로  긍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위로를 하겠다는 나의 정성은 순식간에, 조금 남아있는 희망마저 사그라지게 만드는 질시나 혹은 배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위로라는 것을 포기한다. 가족이나 수십년지기 친구들처럼 나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는 끄집어내려던 위로를 슬그머니 주워담는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위로에 재미붙여 할만큼 오지랖이 넓은 사람도 아니다. 한두번 내 위로가 오해받는 경험을 하고나서는, 나는 그 위로를 해야할 상황에 놓이는 것도 피한다. 혹시라도 나에게 위로를 원할까봐, 제발 나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