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이라면 미국의 최고 경제학자들 조차도 '에디슨과 같은 사람은 하늘이 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정부나 기업 또는 개인이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 즉 '타고난 천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신이 18세기에는 영국에 와트, 아크라이트 등과 같은 천재라는 축복을 듬뿍 주고 다음에는 미국에 에디슨, 벨 등을 선물준 것인가.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언제 축복이 오는 것인가. 미국은 축복이 왜 그렇게 긴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질문 끝에 나온 것이 '혁신'은 개인의 비범함도 중요하지만 혁신의 씨앗이 발아되는 토양, 즉 제도와 문화 등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이것은 의미가 굉장히 큽니다. 에디슨과 같은 인재는 교육이나 훈련에 의해서 키울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런 인재가 주변 여건에 의해서 진짜 에디슨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겁니다.
특허제도가 경제성장을 일으키는가? 만약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허제도의 역사가 짧고 축적된 경험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궁여지책이지만 방법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지난 70년간 모두(冒頭)의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특허제도’라는 단어를 빼고 ‘무엇이 경제성장의 엔진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로버트 솔로(1924~, 미국)…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의 엔진
MIT 대학에 재직하는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 교수는 1950년대 전통적인 경제이론가들의 사고와는 달리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가 자본축적이나 노동력증가가 아니라 기술진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기계의 발명이나 노동 숙련도 증진과 같은 질적 향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기계나 공장의 수를 늘리는 양적인 투자에 비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다. 솔로 교수는 1960년대부터 각국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확대에 공헌했으며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기술혁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특허통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특허통계는 종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는 한계에 부딪혔다.
더글라스 노스(1924~2015, 미국)…재산권 등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워싱턴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더글라스 노스’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연구개발투자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자유시장 경제체제, 사유재산권 제도, 이를 뒷받침하는 법치주의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중요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한, 노스는 영국의 산업혁명은 특허와 같은 재산권 제도가 등장하고 정비되는 과정에서 기술혁신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했다. 1993년 노벨상 위원회는 경제성장을 위한 제도의 역할을 규명한 공로로 노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했다.
노스의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80년대 이후부터 특허제도를 경제학의 주제로 삼는 학자들도 많아졌다. 이 시기부터 미국, 유럽 등 각국 특허청은 특허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은 이제 자신의 가설을 방대한 특허통계를 이용하여 입증하기 쉬워졌다. 이를 통해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산업 분야별 연구, 특허의 가치 산정, 기업의 전략, 판례가 산업에 미친 충격 등 법학, 역사학, 경영학 등으로 학문의 통섭도 시작됐다.
폴 로머(1955~, 미국)…지식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뉴욕대학교 ‘폴 로머’는 90년대 초부터 경제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애덤 스미스 이후 300년 동안 경제학자들이 경시해 온 ‘지식과 아이디어’에 주목했다. 로머가 말하는 지식과 아이디어란 특허, 영업비밀, 상표, 과학 법칙, 해적판 카피 등을 의미한다. 로머 교수는 이러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하나로 묶어 ‘지식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했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창조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보급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긴장과 충돌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그 지식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며, 그 역할은 통화정책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머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특허’를 지식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았고 로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들은 정부의 연구개발보조금도 없고 창업지원 제도도 없고 대학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오로지 특허제도만이 존재하던 시대에서 경제분석을 해야만 그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의 산업혁명을 파헤치고 거슬러 올라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내기 위하여 말을 타고 특허청에 직접 갔는지 아니면 우편으로 특허를 제출했는지도 조사했다. 교통이 불편한 시대에 특허제도의 신청 절차가 혁신을 가로막았던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에디슨이 특허청에 낸 수수료가 얼마인지도 밝혀냈다. 특허를 내기 위한 비용이 가난한 발명가의 앞길을 방해했던 것은 아닌지 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로머의 주장이 옳다는 연구가 점점 쌓여 갔다. 2018년 로머는 지식 경제학의 지평을 열고 혁신과 번영을 장려하는 정책에 대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혁신생태계를 구성하는.. 4개의 기둥과 상호작용
경제성장과 기술혁신 그리고 특허제도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이제 성과를 종합하고 각 국가에 지침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경제개발 협력기구(OECD),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등은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고 지속 가능한 혁신생태계를 구성하는 네 개의 기둥을 제시했다.
첫 번째 기둥은 혁신에 대한 자금이다. 이 기둥은 정부의 연구개발 자금, 벤처캐피털, 조세 감면 등 혁신을 위한 자금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두 번째 기둥은 인적자본이다. 교육과 훈련이 근간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없이 혁신은 없다. 세 번째 기둥은 지식재산이다. 지식재산은 특허, 영업비밀,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마지막, 네 번째 기둥은 시장이다.
국제기구들은 특허와 자금, 특허와 인적자본 등 각 기둥이 상호작용하도록 연결고리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들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거나 느슨하면 국가의 혁신 효율성은 떨어진다. 우리 연구개발 투자는 GDP의 4%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이다. 교육열도 어떤 나라 못지않게 높다. FTA로 세계 시장은 열려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 4개의 기둥 간에 느슨한 연결고리를 찾아 이어가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