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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창 Apr 06. 2020

제임스 와트와 혁신의 자금

와트의 창업과 벤처 자금 조달, 오늘날과 닮은 꼴

제임스 와트와 혁신의 자금(파이낸셜 뉴스 기고)https://www.fnnews.com/news/202002091638261248를 소개합니다.



산업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제임스 와트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증기기관 발명에 필요한 막대한 연구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시는 정부 연구개발 보조금 같은 제도도 없었고 사업화 자금이나 창업공간을 지원해 주는 곳도 없었다.

가난한 와트가 증기기관 발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도대체 어디서 마련한 것일까.


글래스고 대학에서 창업


와트가 태어나기 이전에 뉴커먼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증기엔진이 있었다. 뉴커먼 엔진은 탄광에서 침수된 갱도의 물을 퍼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뉴커먼 증기엔진을 수리하면서 이 엔진의 에너지 효율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어 그는 이 엔진 개량에 착수해 초기 4년 동안 1200파운드의 연구비를 자비로 충당하거나 빚을 내서 마련했다. 당시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30파운드 정도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련과 좌절


연구비가 쪼들린 와트는 연구를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와트의 증기기관 연구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스코틀랜드의 사업가 로벅이다. 로벅은 와트의 부채를 떠맡고 증기기관에 필요한 연구자금을 지원했다. 대신에 특허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3분의2는 자신이 가지기로 했다. 와트는 개량된 증기기관의 모형을 완성하고 1769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특허를 확보했다. 이어 첫 번째 증기기관을 탄광에 설치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실패했다. 게다가 로벅은 자금난이 가중돼 파산해 버렸고 와트의 성공을 기다리던 아내마저 사망했다. 와트는 절망했고 삶의 길을 잃었다.


투자가 볼턴과의 만남


    희망을 잃은 와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매튜 볼턴이다. 볼턴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버밍햄의 실력 있는 기업가였다. 볼턴은 로벅의 빚을 탕감해 주고 엔진 판매로 수익이 나면 천 파운드를 더 준다는 조건으로 와트의 특허지분을 인수했다. 두 사람은 1774년 '볼턴 앤 와트'를 설립하고 증기기관 특허 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는 보호 기간 14년 중에서 이미 6년이 지나 버린 상태였다. 증기기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이대로 가면 새로운 증기기관을 완성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1775년 와트와 볼턴은 의회에 증기기관 특허연장을 신청했다. 스코틀랜드와 버밍햄의 유력 정치인들도 거들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의회는 마침내 특허권 연장을 허락해 주었다. 두 사람은 뛰어난 증기기관 엔진 개발에 매진했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1776년 마침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가 아는 것처럼 증기기관이 섬유와 철도 산업 등에 이용되면서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와트와 볼턴도 증기기관 사업이 번창하면서 풍요로운 여생을 보냈다.


와트의 DNA 가진 혁신가 기대


    최근 정부는 특허를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지식재산 금융이 1조 3000억원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현장에서 만난 어떤 기업은 지식재산 금융지원 덕분에 소비자 가전전시회(CES)에서 혁신상도 받았다고 한다.

진흙 속에 묻힌 혁신의 씨앗을 발굴하는 것은 금융인의 몫이다. 와트의 혁신 DNA를 가진 우리 기업이 혁신의 씨앗을 볼 줄 아는 금융인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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