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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Nov 14. 2021

살다보면

그럼 그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급성폐렴에 걸려 일주일간 입원했던 아이가 등교했다. 고생이 많았는 얼굴이 핼쑥했다. 점심시간에 놀이터에 안 가고 혼자 도서실로 갔다.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약을 챙겨 도서실로 내려갔다. 마침 아이가 도서실 문을 나오고 있었다. 

“진수야, 약 먹자”

내가 손짓을 하였더니, 녀석이 되려 정반대 쪽 골마루로 후다닥 달려갔다.

“화장실 갈 거예요!”     


골마루에 약봉지를 들고 서 있기가 어색해서 아이 뒤를 따라갔다. 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용변기 한 칸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있었다. 진수는 하필 꼬마 옆에서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나도 몇 칸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진수 몸동작이 어쩐지 수상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갑자기 옆에 있는 꼬마 쪽으로 몸을 휙 돌리더니 물총을 발사했다. 나는 황급히 바지춤을 올리고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 뭐하는 짓이야!”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이미 일학년 꼬마 바지 한쪽이 젖어 있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아이 입이 삐쭉삐쭉 하고 있었다. 나는 바지춤을 잡고 한발 물러 서있는 도발자를 최대한 험상궂게 노려보았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가 불현듯 사고를 치곤 했다. 아이는 잠깐 자기 속에서 나와 기웃거리다가 꽃게처럼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애먼 동생을 울게 했다. 나는 화장실 한쪽에 아이를 세우고 두 손을 들고 서 있으라고 했다. 꼬마 바지에 물로 적신 지도가 선명했다. 울먹이는 아이하네 말했다. 

“미안해, 저 형이 우리 반인데 마음이 좀 아파서 그래. 선생님이 대신 미안해.” 

하지만 말이 되려 아이 울음보를 자극했는지 흑흑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마를 거야. 날아갈 거야. 물 하고 똑같거든.”


나는 손으로 화장지를 둘둘 감아 얼룩진 부분을 꾹꾹 눌러 닦아내며, 진수를 책망했다.

“이놈아! 네가 동생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쳐다봐라. 지금 동생이 울고 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아이도 사태가 심각한 듯 두 손을 치켜든 채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학년 꼬마의 울음이 그치지를 않았다. 화장실에서 아이 한 명은 울고, 다른 아이는 벌 서고 있고, 어른 한 명은 아이 바지춤을 잡고 허둥지둥하고...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꼬마 반 담임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싶었다.      


꼬마를 데리고 일학년 교실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놀라서 눈이 휘동그래졌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마치 내가 그 선생님한테 잘못한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그렇게 꼬마를 보내주고 화장실로 돌아왔더니, 진수는 화장실 한쪽에서 여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 

     

아차! 지금 약을 먹이려다 이렇게 되었지. 진수를 데리고 보건실로 갔다. 보건 선생님이 커피포트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주었다. 나는 약봉지에서 알약을 꺼내 아이 입에 톡 털어 넣어 주었다. 아이가 아무 저항 없이 약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시렸다. 보건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차분한 아이를 보고 오늘은 얌전하게 말 잘 듣는다고 칭찬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종료하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뭔가 내 아랫도리에서 시원했다. 아뿔싸! 대문이 열려 있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놀라서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한 까닭이다. 돌아서서 황급히 지퍼를 올렸지만 체면이 영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보건실을 나오며 버벅거렸다. 

“짜식이 화장실에서 사고 치는 바람에 어버버..” 

    

진수를 앞세우고 교실로 오면서, 억울한 내 마음을 보건 선생님이 알아주려나 싶었다.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 주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는 진수와 일학년 꼬마와 나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그럼 그럼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괜찮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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