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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Nov 28. 2021

파란 하늘

우리들도 날아 보자. 높게 높게 날아 가보자.

첫 시간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 분필 가루 묻은 손을 털고 막 의자에 앉았는데, 교실 앞문으로 꼬마가 들어오더니 쪽지를 불쑥 내밀었다.  

[정보부장님, 큰일 났어요. 2교시가 음악인데 컴퓨터에서 소리가 안 나요. 꼭 고쳐 주실 거죠?]     


1학년 1반 선생님이 보낸 쪽지였다. 학교에서 정보부장이란 정보를 다루는 업무가 아니라, 교사용 컴퓨터가 말썽을 부릴 때 응급조치를 취해 주는 서비스 기사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도나도 쉬는 시간. 나는 점심시간쯤 가볼 마음으로 꼬마한테 말했다. 

“수고했다. 선생님한테 알았다고 전해 드려라.”     


그런데 1학년 꼬마가 냉큼 가지 않고 턱밑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이는 나랑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야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어른 얄밉다고 1학년을 내쫓을 수 없었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드라이브를 꺼내 뒷 호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아이 뒤를 터벅터벅 따라가며 구시렁구시렁 푸념을 했다. '분명 여우 같은 선생님이 꼬마를 꼬드겼을 거야. 정보부장을 체포해서 동행하라고'


1학년 1반 교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창문 밖에 멈춰 서서 보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한참 야단치는 중이었다. 꼬마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손을 얹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내가 노크를 하고 빼꼼 문을 열어도 흥분한 선생님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수많은 토끼들 눈동자만 낯선 방문객을 향하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흠칫 놀라 돌아보는 선생님 얼굴이 발갛게 달아 있었다. 악동들이 어지간히 말썽을 피웠구나 싶었다. 나는 달아오른 선생님 얼굴이 민망해서 못 본 척, 드라이브를 들고 교사용 컴퓨터 쪽으로 다가갔다. 머리까지 치솟은 담임의 화가 풀리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선생님 올 때까지 꼼짝 말고 그대로 있어!"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교실을 나갔다. 그 말은 꼬마들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컴퓨터 안되면 혼 날 줄 아세욧!' 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튼 교실에는 힘없는 정보부장과 꼬마들만 남았다. 아가들아! 수고가 많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모양새로 만나게 되었느냐. 


작업 도중 힐끗힐끗 아이들을 보았다. 철부지 1학년들은 아무도 손을 내리지 않고 선생님이 시킨 대로 입을 꼭 다물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오로지 말똥말똥한 눈들만 좌우로 오가며 컴퓨터를 고치는 내 몸짓과 동선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알고 있으면 너무나 쉬운, 모르면 너무나 어려운 컴퓨터 고장이었다. 나는 불과 3분 만에 문제를 찾아 해결했다. 이제 음악 시디를 넣고 소리 테스트만 하면 작업 끝이다. 토끼들도 작업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초롱초롱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조심스럽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띵똥!"     


스피커에서 동요 반주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성공이다. 나는 숙련된 기술자처럼 손을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헤어질 꼬마들을 위해 반주 음악을 조금 더 들려주고 싶었다. 음악이 말 못 하는 아이들 마음을 토닥거려 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누구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저희들끼리 약속을 한 듯 , 반주에 맞추어 동요를 불렀다.  


꼬마들은 지금 자신들이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모두 하나 같이 머리에 손을 얹은 자세 그대로, 참새처럼 노래를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징벌과 노래가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꼬마들 입에서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감성. 그것은 마치 어른들을 향한 희망과 소망과 화해의 화음으로 들렸다. 나는 합창을 듣는 동안 꼼짝달싹을 할 수 없었다.   

   

♪파란 하늘 맑은 하늘 흰구름 둥실 떠가네♬

♪우리들도 날아 보자 높게 높게 날아 가보자♬

♪파란 하늘 맑은 하늘 흰구름 흘러간다♬

♪우리도 흘러가자 빨리빨리 달린다♬     

https://music.bugs.co.kr/track/2944163


꼬마들은 2절까지 줄기차게 불렀다. 동요가 끝나자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이 내 몸을 감쌌다. 나도 무엇이든 보답하고 싶었다. 

"애들아, 선생님 컴퓨터 잘 고치지?"

"예!!!!!"

꼬마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럼 박수!"


머리 위에서 있던 고사리 손들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오고, 교실 안에 수많은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듯 열렬한 박수가 터졌다. 나는 내친김에 담임 권한을 월권했다.   

“잘했어요! 이제 끝! 모두 휴식!”     


아이들이 보석을 쏟아놓은 것처럼 흩어졌다. 어떤 아이는 친한 친구 옆으로, 어떤 아이는 교실 밖으로, 또 어떤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나 또한 홀가분하게 임무를 마치고 우리 교실로 복귀했다. 교실에 돌아와도 감동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잠시 쉬는 동안 아동권리협약을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그 항목이 들어있었다. UN아동권리협약 31조. 우리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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