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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Nov 15. 2021

보고 싶다 다람쥐

낡은 동전 속에 반짝이던 그 아이 마음

봄날, 우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운명처럼 만난다. 아이들과 나는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며 일 년을 지낸다. 그리고 딱 일 년이 지나면 미련 없이 헤어진다. 교실은 텅 비고 남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나무처럼 아련한 그 무엇인가 남아 있다. 


그해 새 학교에 부임한 첫날, 아침 일찍 배정받은 교실로 갔다. 낯선 교실을 두리번거리며 3층 긴 복도 끝 쪽으로 걸어가니 5학년 3반 패찰이 보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교실 앞에 아이 한 명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줄곧 이 쪽을 바라보다가, 내가 가까워지자 손을 빼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선생님이 우리 반 선생님이세요?”

“응, 너도 5학년 3반이냐?”

“예”

“그래, 반갑다.”     


아이 표정에 살짝 실망한 표정이 스쳤다. 아침 일찍 와서 잔뜩 기대했는데 고운 여선생님이 아니라 중늙은이 남선생님이라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아이가 약간 엉뚱하고 불량스러워 보여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 석이라는 녀석은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나들다가, 교사가 방심하는 순간에 혼란을 유발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말썽쟁이. 예를 들면 하교 인사도 가끔 이런 식이다.   

“안녕히계세요쿠르트라이앵글쎄올시다람쥐똥구멍!”     


기분 좋은 하교 시간인데, “이놈, 무슨 말장난이냐?” 고 야단치기도 애매했다. 겉으로는 허허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찜찜했다. 시간이 지나자 녀석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나도 당근과 채찍으로 맞대응했다. 또래 집단 우두머리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 선을 넘지 않는 이탈은 눈 감아 주지만, 공공의 질서를 해하는 행위는 그냥 두지 않았다. 일탈과 반항. 회유와 압박. 여름이 올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밀당을 했다. 그리고 점차 서로에게 길들여졌다.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이 석이를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항의할 정도로 우리는 막역해졌다. 맞다. 특혜였다. 나는 석이가 방송부에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다는 걸 알고, 개과천선을 기회로 방송부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한테 양해를 구해다. 

“착한 서른한 마리 양들아, 철 없는 한 마리 양을 위해 너희들이 조금 기다려 주면 고맙겠다.”   

석이를 포함한 열두 살 인생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웃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기장을 세어 보니 몇 권 모자랐다. 일기장 안 낸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석이가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일기장을 안 냈으면서 왜 안 나오냐?”

“저 아까 냈어요!”   

   

나는 아이를 불러 교탁 위에 있는 일기장 중에서 네 것을 찾아보아라 했다.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도 일기장을 냈다고 염소처럼 우겼다. 나는 녀석의 동공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일단 자리로 돌아가서 다음 수업 시작 전까지 잘 찾아보라며 시간을 주었다.      


악동은 잔머리를 계속 굴리고 있었다. 첫째 시간이 지나가고 우유 급식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우유를 마시고 나는 연구실로 학년 회의를 하러 갔다. 석이는 그 틈을 타서 도서실로 가서 후다닥 일기를 썼다. 그리고 부하 역할하는 친구를 시켜 일기장을 선생님 책상 근처에 떨어뜨려 놓으라고 시킬 작정이었다. 그렇게 하면 또 다른 부하가 우연히 일기장을 발견한 듯 큰소리로 “어! 여기 석이 일기장이 떨어져 있네!” 하면서, 일기장을 주워 교사용 책상에 올려놓으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알량한 계획은 초장에 발각되어 버렸다.   

   

나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내가 너를 달걀 품고 가듯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데, 이렇게 사기를 칠 수가 있나! 맥이 풀려 점심시간에 밥 한술 못 뜨고 찬물만 들이켰다. 결국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그 후 악동의 일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전처럼 알콩달콩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다. 어린이회의에서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시작하였다. 모금을 시작하는 첫날, 교탁 위에 있는 모금함에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받은 용돈을 넣었다. 대부분 천 원 이천 원 가끔 오천 원짜리 지폐도 들어갔다. 그런데 석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나오더니, 마치 잠시 맡아 준  물건을 돌려주는 것처럼 슬그머니 교탁 위에 놓고 제 자리로 들어갔다. 비닐봉지를 펼쳐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동전들과 함께 꼬깃꼬깃한 지폐도 섞여 있었다. 하루 이틀 동안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석이네 집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휴대폰을 수거하면, 값 비싼 고급 스마트폰이 한 바구니 가득하였다. 그 속에 유일한 낡은 구식 폴더폰이 석이 휴대폰이다. 체육복은 오래 입어서 축구할 때 발목이 훤히 드러나고, 윗도리는 배꼽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작았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는 듯 운동장을 뛰고 달렸다. 낡은 동전 속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보석 같은 마음을 뒤늦게 본 것 같았다. 아이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었지만, 예전처럼 살갑게 안아주지는 못했다.        


찬 바람이 부는 2월, 우리 반이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아이들과 일일이 작별 포옹을 나누었다. 석이는 아까부터 맨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친구들이 교실을 빠져나가자 마지막 차례로 내 앞에 섰다. 우리는 작년 삼월 개학 첫날 아침처럼 마주 보았다. 나는 느꺼워져서 힘껏 아이를 껴안아 주었다. 석이도 평소답지 않게 주뼛거리더니 말했다.   

“선생님한테 꼭 할 말이 있었는데... 에이, 그냥 부끄러워서 말 안 할래요.”     


그렇게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교실을 나갔다. 우리는 이 교실에서 제일 처음 만나서 제일 마지막에 헤어졌다. 나는 골마루로 나가 아이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안녕히가세요귀여운녀석아주가끔은네가보고싶겠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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