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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Dec 28. 2021

[동화] 얄리와 무지개 지렁이

신붓감을 찾아 떠난 여행 이야기



얄리와 무지개 지렁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어요. 저 멀리 밤하늘에는 누구나 하나씩 자기 별이 있다고 해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여러분 별도 어디선가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혹시 케이크 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케이크 별은 생일 케이크처럼 생겼어요. 생일날 불을 끄고 생크림 케이크에 작은 촛불을 켜면, 동그랗게 둘러앉은 얼굴마다 고운 빛이 일렁이는 모양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저 멀리 어둠 속에는 케이크 별이 빛나고 있지요.      


케이크 별 둘레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된 땅 덩어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어요. 동그란 땅, 네모난 땅, 세모 땅 그리고 하트, 도넛, 비스킷... 별별 모양이 다 있어요. 크고 작은 땅 덩어리에는 이름도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케이크 별을 가운데 두고 함께 춤추는 듯 빙글빙글 돌고 있어요.        


오늘 이야기는 그중에서 막대 사탕 나라 이야기예요. 왜 하필 막대 사탕이냐고요? 공처럼 둥근 땅덩어리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그래요. 아주 멀리서 보면 사탕에 막대를 꽂아놓은 것 같다니까요. 그 나무 이름은 하늘 나무예요. 


하늘 나무는 참 신기해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에 온갖 과일이 열려요. 사과, 딸기, 포도, 앵두, 토마토, 복숭아, 바나나 등등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요. 바람이 부는 날에는 크고 작은 과일들이 작은 종처럼 흔들려요. 그러면 향긋한 과일 향기가 막대 사탕 나라를 가득 채우고, 이웃 나라까지 훨훨 날아가요. 여러분도 눈을 감고 코를 흠흠 해 보세요. 맛있는 과일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꼬마 얄리가 하늘나무에서 맛있는 과일 한 바구니를 땄어요. 

“하늘 나무님, 맛있는 과일 잘 먹을게요.”

“모두 땀 흘리며 나를 가꾸어 준 덕분이야. 많이 먹으렴.”      



막대 사탕 나라에는 또 하나 특별한 친구가 있어요. 무지개 지렁이예요. 매끈한 피부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을 두르고 있는 무지개 지렁이는 부끄럼이 많은 친구예요. 늘 땅속을 다니면서 씨앗이나 작은 뿌리를  엄마처럼 부지런히 보살펴줘요. 무지개 지렁이도 가끔 흙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얄리와 인사를 나누어요. 

“안녕, 나는 착하고 부지런한 얄리님이 자랑스러워요!”

“안녕, 나도 착하고 부지런한 무지개 지렁이님이 좋아요.”     


얄리는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하늘 나무 밑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아요. 낮에는 밭에 나가 씨앗을 심고,  꽃과 야채와 나무에 거름과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요. 밤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쏟아지는 별을 보며,  별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불러요. 얄리 가족은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세월이 흘러 얄리가 청년이 되었어요. 이제 신부를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어요. 멋진 얄리가 신붓감을 구한다는 소문이 우주에 퍼졌어요. 여기저기서 좋은 신붓감이 있으니, 한번 와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얄리는 우주를 나는 마법 상자를 타고 아가씨들이 사는 나라로 날아갔어요.      



처음 도착한 곳은 큰 땅 나라예요. 모든 것이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지요. 궁전도 성도 길도 엄청나게 넓고 컸어요. 힘센 임금님과 키가 큰 공주님이 얄리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공주님은 얄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첫눈에 반한 거죠. 공주님이 임금님보다 먼저 말했어요.

“멋진 얄리님, 저와 결혼해 주세요.”

“잠깐만요. 먼저 서로 마음을 맞춰 보기로 해요.”

얄리가 말하자, 공주님은 만약 결혼을 해주면, 얄리 나라에 커다란 궁전을 지어주겠다고 했어요. 얄리는 고맙지만 막대 사탕 나라는 너무 작아 궁전을 지을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하늘 나무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궁전을 지으면 되죠.”


얄리는 깜짝 놀라 손을 가로저으며, 하늘 나무를 베면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힘센 임금님이 큰 땅 나라에 과일이 많이 있으니, 결혼을 하면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어요. 공주가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어요. 

“그런데 얄리님은 제게 뭘 주실 수 있어요?”

얄리도 자신 있게 큰소리로 대답했어요.

“야채를 드릴게요. 아주 싱싱하고 맛있는 야채랍니다.”

“야채라고요? 나는 야채가 정말 싫어요. 얄리님은 저를 위해 해 줄 것이 없군요. 그럼 안녕!”     


얄리는 다음 나라로 갔어요. 이번에는 멀리서 보아도 예쁜 땅이에요. 그 나라는 모든 것이 예뻤어요. 나무도 집도 길도 예뻤어요. 예쁜 여왕님이 왕관을 쓰고 얄리를 맞이했어요. 얄리는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백을 했어요.

“눈부신 여왕님, 부디 저와 결혼해 주세요.”

“좋아요. 얄리님. 하지만 저와 결혼하고 싶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셔야 해요.”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나요. 여왕님?”

“그건 참 쉬워요. 얄리님한테 가장 소중한 것을 저한테 주시면 돼요.”     


얄리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어요. 

“여왕님,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지개 지렁이예요. 우리는 오랜 친구 거던요.”

“그럼 사랑의 표시로 무지개 지렁이를 주세요.”

어! 무지개 지렁이가 없으면 씨앗이 자랄 수가 없어요. 새싹들도 금방 시들어 버릴 거예요. 얄리는 만약 무지개 지렁이가 없다면 야채와 과일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나라에는 일 잘하는 예쁜 지렁이가 많아요. 그걸로 바꿔 드리겠어요.”     

얄리는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정든 친구를 볼 수 없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았어요. 

“여왕님, 무지개 지렁이는 오랜 친구라서 드릴 수가 없어요. 다른 것은 안될까요?”

여왕님은 아쉬워하며 말했어요. 

“당신은 멋지지만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지 못했어요. 안녕.”     


얄리는 세 번째 나라에 도착했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 똑똑 나라 땅이었요. 그 나라 사람들은 얄리가 타고 온 마법상자를 보고 깔깔 웃었어요. 똑똑 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사용하던 비행선이 거던요. 뽐내기를 좋아하는 왕이 문제를 냈어요. 왕은 얄리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려운 문제를 냈어요.

“겨울에 창가에 앉아 있었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한 거야. 외출하기 딱 좋은 날이라 밖을 나갔지. 그런데 엄청 추웠어. 그러면 나는 햇빛한테 속은 거니, 유리창한테 속은 거니? ” 

얄리는 왕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왕이 “불합격!” 하고 껄껄 웃었어요.      

이번에는 왕비가 문제를 냈어요. 왕비는 얄리가 사윗감으로 마음에 들어서 쉬운 문제를 냈죠. 

“얄리씨가 사는 곳에, 함께 일 하는 가족들의 생일을 말해 줄래요. 자상한 남자는 생일을 잘 기억하니까.”

얄리는 엄마 아빠 누나 생일을 정확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무지개 지렁이 생일은 말하지 못했어요. 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괜찮아요. 지렁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합격!”

마지막으로 공주 차례예요. 공주는 시험지를 들고 왔어요.

“얄리님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주세요.”

얄리는 자신 있게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냈어요. 공주가 깜짝 놀라 말했어요.

“95점이군요. 아니 어떻게 95점을 받죠? 시험은 모두 100점 받는 것 아닌가요! 실망이에요.”     


얄리는 세 번씩이나 차여서 힘이 빠졌어요. 다른 나라 신붓감을 만나 볼 생각도 사라져 버렸어요. 얄리가 막대사탕 나라로 돌아오자, 엄마 아빠와 누나도 얄리 표정을 보고 신붓감 못 구한 것을 알아챘어요. 얄리는 밭으로 달려가서 무지개 지렁이를 불렀어요. 무지개 지렁이가 일을 하다 말고 땀을 닦으며 땅 밖으로 나왔어요. 

“무슨 일이에요. 얄리. 표정이 왜 그래요?”

"응, 궁금한 게 있어서요. 생일이 며칠이죠?"

예쁜 나라 왕비가 탐내던 무지개 지렁이가 그대로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날 밤 가족들이 얄리를 위로하는 파티를 열어주기로 하였어요. 밤이 되자 저 멀리 케이크 별이 점점 밝아졌어요. 파티는 별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시간에 시작될 거예요. 그런데 음식 준비를 도우던 얄리가 말했어요.

“모두 잠깐만요. 새로운 친구를 초대했어요.”

“아니 정말? 누군데?”

가족들 눈이 똑같이 휘동그레 해졌어요. 여태껏 하늘 나무에 누구를 초대한 적이 없었거던요. 얄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았어요. 무지개 지렁이였어요. 무지개 지렁이는 부끄러워 몸을 동그랗게 말았어요.  

“잘했다. 잘했어! 역시 착한 얄리야!”

엄마 아빠 누나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어요. 


드디어 팡파르가 울리고 파티가 시작되었어요. 엄마는 짧은 치마를 입고,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했어요. 멋쟁이 아빠는 알록달록한 모자에 빨간 바지를 입고 개다리 춤을 추었죠. 하늘을 나는 낡은 마법상자가 반주곡을 쾅쾅 틀어주고, 누나와 얄리도 웃기는 옷으로 갈아 입고 신나게 몸을 흔들었어요. 무지개 지렁이도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고 웃었어요.

  

한참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우주 불꽃놀이가 펼쳐졌어요. 케이크 별에서 폭죽이 올라와요. 어두운 하늘에 커다란 꽃이 피고 폭포 모양 불꽃이 땅으로 쏟아졌어요. 그리고 아주 큰 폭죽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엄청난 불꽃들이 보석처럼 땅으로 쏟아져 내렸어요. 사람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어요. 멋진 불꽃놀이가 영화처럼 펼쳐졌어요.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오던 작은 불꽃 하나가 하늘 나무 쪽으로 왔어요. 작은 불꽃은 얄리 손바닥 위에 있던 무지개 지렁이 몸에 살짝 내려앉았어요. 그 순간 펑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가 치솟았어요. 얄리 가족 모두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얄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하얀 연기가 천천히 걷혔어요. 자세히 보니 무지개 지렁이는 간 곳이 없고, 연기 속에 어여쁜 아가씨가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 아가씨는 일곱 빛깔로 된 선녀 옷을 입고 얄리에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어요. 케이크 별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나라에서 또 다시 폭죽을 쏘아 올렸어요. 밤하늘은 꽃들과 보석들로 가득 찼어요.      


오늘이 바로 그날이랍니다. 먼 우주 끝에 있는 케이크 별이, 해마다 막대 사탕 나라를 위해 화려한 불꽃놀이를 펼치는 날 말이예요. 밤하늘에는 오늘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어요. 누구나 하나씩 자기 별이 있다고 해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저 우주 어딘가 당신 별도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여러분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끝.




이번에도 시작은 막막했습니다. 네 컷 그림을 이리저리 퍼즐 맞추듯 한참을 조합해 보았습니다. 계절 탓인지 자꾸 슬픈 이야기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워낙 밝고, 곳곳에 힌트가 있어서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작자 동글이의 밝은 감성 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 알지 모르는 흠결이 많아서, 퇴고 할수록 자신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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