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 영화가 재밌다고 한다. 영화 러닝타임 3시간 중 1시간은 여성의 누드 씬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난교섹스가 역겨웠다.
저녁 6시 2분. 동태눈깔로 여의도행 9호선을 탄다. 이때의 여의도역 9호선은 지하철을 두 개쯤 보내야지만 탈 수가 있다. 내 앞뒤로는 6시를 전후로 회사에서 쏟아져 나온 증권맨들이, 덩달아 동태눈깔을 하고 있다.
겨우 탄 지하철에서 앞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풍겨 온다. 사실 앞사람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의 얼굴은 지금 내 얼굴 바로 밑에 있다. 서울 지하철 한 칸은 18평이고, 혼잡한 9호선은 한 칸에 360명까지 낑겨 탄 기록이 있다. 나에게 허용된 면적은 0.05평이다.
안면도 튼 적 없는 사람들과 서로 민망한 부위를 맞대고 있다. 문득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짐승같은 파티씬이 떠오른다.
우리도 그런 파티를 즐길 수 있을까. 이 직장인들이 그런 파티를 즐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이 사람들은 아무래도 직장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 같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미국의 증권사 스트래튼 오크먼트를 창립한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일생을 다룬다. 주로 마약, 섹스, 사기 이야기다.
그런데 섹스도 적당히 해야 재밌지. 3시간 내내 하고 앉았다. 우리들과는 다른 삶의 양태에 동경보단 기괴한 마음이 앞선다.
한편으론 '내가 모르는 어딘가엔 진짜로 저런 삶을 구가하고 있는 이들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일단 이 지하철 안은 확실히 아니다.
그들은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을 테고, 매일밤 파티를 열겠지. 파티는 몇 시에 끝날까? 출근을 안 할 테니 오전 10시쯤 끝나려나.
부러워? 라고 누군가 물으면 '아니'하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부러운지 안 부러운지는 따져 봐야 한다. 그런데 이걸 따져보는 순간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등장인물 패트릭 덴햄은 중요하다. FBI 요원인 그는 주인공 벨포트를 수사해, 끝내 그를 감옥에 집어넣는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요트 씬에서, 벨포트는 덴햄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갖은 수작을 부린다. 자신의 개인 요트로 덴햄을 초대한 벨포트는 엄선된 두 명의 A급 창녀와, 각종 뇌물을 덴햄에게 건네지만 고지식한 덴햄은 응하지 않는다.
이에 벨포트는 '너 같은 놈은 평생 랍스터도 못 먹는다'며 비웃는다.
벨포트가 돈으로 덴햄을 설득할 때, 더 이상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멘트가 나온다. 스콜세지의 미학은 러닝타임 1시간 반 뒤에, 덴햄이 벨포트를 감방에 처넣고 지하철로 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영화에서 덴햄의 심경을 대변하는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이 지하철씬이 그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덴햄은 지하철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 그깟 랍스터 좀 안 먹으면 그만이지' 따위의 한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쨌건 이 15초짜리 지하철씬을 위해 의도적으로 3시간 동안 난교를 튼 것이라면, 이 직장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콜세지에게 마땅히 박수를 건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