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한다던 친구와 시간을 맞출 수가 있었다. 저녁 한 끼 하자며 연락을 주고받은 뒤로, 나름 맛집으로 알려진 동네의 돼지국밥집을 찾아갔다. 먼저 도착해서 신발을 벗지 않고 앉을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니, 곧바로 친구도 가게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느 때처럼 친구는 섞어국밥을, 나는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나도 지나가면서 들은 거라, 정확히는 기억나진 않는데 말이야..."
"음?"
"저기 따로국밥이라고 있잖아?"
"어 있지"
"예전에 조선시댄가? 그때부터 사람들이 돼지국밥을 좋아하고 많이 먹었대. 그런데 양반들은 저기 밑에 사람이나 먹는 거라고 생각했다나? 더군다나 국에다가 밥을 말아먹는 걸 굉장히 상스럽게 생각했다는 거야. 그래서 돼지국밥을 안 먹었는데, 게 중에는 몰래 이를 찾아 먹으려는 사람도 있었던 거지. 하지만 국에 밥을 말기까진 못하고, 국 따로 밥 따로 해서 따로국밥이 생긴 거라고 하더라."
"아 그래? 그럴싸한데"
우리는 이런저런 화젯거리를 반찬 삼으며, 혼자 먹을 수도 있던 저녁시간의 쓸쓸함을 달랠 수 있었다.
잘 먹었다. 국밥은 언제나 그랬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보단, 든든하다는 푸짐한 만족감을 선물해줬다. 겨울에는 특히나 더 한 것이, 얼었던 온몸에 여름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이대로 헤어지긴 뭔가 아쉬운 느낌이 없지 않았던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크게 돌아보기로 했다. 이날은 어찌 그리도 달이 살을 찌웠는지, 가로등이 띄엄띄엄 놓인 골목길도 훤히 그 민낯을 드러냈다. 그렇게 친구네 아파트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뭔가가 보였다. 개다. 백구 같았다. 친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나 보다.
"아 저 개 주인 없는 갠데 여기 근처서 돌아다녀. 사람을 잘 따라서 우리 어머니도 여기 지나다니시다가 뭐 먹을 거 주고 그러신대."
나는 개가 좋다. 이런 집 없는 친구들을 만나면 애처로움도 많이 느끼고 뭔가라도 해주고 싶다. 그런데 사람을 잘 따른다는 친구의 말에, 근처 슈퍼에 들러 뭐라도 사주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 떠돌이 개들은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친밀한 이가 아닌 아무 사람이나 잘 따르는 건 위험하다고 봤다. 세상엔 얼마든지 너를 해코지할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야 했다.
동네 주민들이 먹이 그릇도 갖다 놓고 이것저것 준다시니깐, 나는 두어 번 쓰다듬기만 하고는 훠이~ 훠이~ 손짓으로 저리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개는 계속 우릴 따라왔다. 나는 위협적으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땅을 쿵쿵 찍어내리며 몸짓을 크게 하고 소리를 내면서 개를 향해 갔다. 이내 백구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게 이 녀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네에 도착했다. 친구는 날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린 데다가 좀 더 걷고 싶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눴다.
얼마가 지났다. 오랜만에 또 친구의 저녁 퇴근길에 만나 돼지국밥을 먹기로 했다.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집 근처서 저녁으로 먹기엔 제일 적당한 메뉴인 것 같다는 건, 나도 친구도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우리의 식후 코스는 또 걷기였다. 생각도 않고 걷다 보니 어느새 저번의 그 개를 만났던 길을 밟고 있었다. 불현듯 친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고, 나는 뒤이을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저번에 그 개 기억나?"
"그 개? 음... 백구?"
"어. 걔 죽었다네. 저기 산에 올라가는 길에 과수원 같은 데 있잖아. 거기에 있는 덫 같은 거에 걸려서 막 내장이 다... 그리 죽었다네. 새끼도 있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