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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ung Abby Lee Dec 21. 2020

그렇게 다시 새로 찾은 방

[집구하기편 #5] 또 보자마자 계약금을 치렀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방이 공사장 앞인 걸 뒤늦게 알아 버린 나는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했다. 방 자체는 너무 좋단 말이야.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보위(泊寓) 공유 오피스텔로 향했다.

공사났네 공사났어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건물 앞이 그냥 다 공사판이었네. 뭘 터트리는지 ‘펑펑’하는 소리가 난다. 이걸 못 본 나도 참 바보다. 하하. 한숨이 절로 나오네.


“안녕하세요, ㅇㅇ호 입주하기로 한 한국인인데요, 방에서 공사 소리 좀 들어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비밀번호는 ㅇㅇ이예요.”

(왼) 왼쪽 복도 창문 (우) 입실 예정이었던 방 앞 광경

11시 반 넘어서 그런지 공사 소리가 안 들린다. 점심시간인가? 아니면 혹시 주말에는 안 하는 건가?


하지만 야속하게도 12시가 넘으니 들리는 공사 소리. 창문을 닫아도, 커튼을 닫아도 들리는 소리에 ‘여긴 정말 아니다.’라는 마음을 확실히 굳혔다. 편하게 쉬어야 할 주말에 공사 소리를 신경 써야 하는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 소비인 거다.


오전 11시 반 약속이 저녁 7시 반으로 밀린 터라 오후 1시 약속으로 바로 향했다. 일부 방을 호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12시 체크아웃 이후 가야 방을 최대한 많이 볼 수 있대서 이 때로 약속을 잡았다. 여유 있게 온지라 단지(小区) 주변을 돌아다녔다. 서문 쪽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부동산 앱 리엔지아(链家)에서 연락한 분이 나타났다.


방 보러 가기 전에 소속을 물어봤다. 호텔로 운영한다는 부분에서 리엔지아 소속은 아닌 걸로 보여서 말이지. 예상대로 다른 회사 소속. 워아이워지아(我爱我家)는 해당 부동산 매물만 올라오는데, 리엔지아는 다양하게 올라오나 보다.


1. 건물 E

가격: 적당

위치: 좋음

공과금: 적당

1) 스물여섯 번째 방

남향 50m2

냉장고도 크고, 남향에 창 밖으로는 공원이 보여서 뷰가 참 좋다. 소파가 보풀이 많이 일었지만 가구 느낌도 괜찮다. 세탁기도 통돌이가 아닌 드럼 세탁기!

중개인 분은 친절하게 전기세는 1도에 0.73위안(123원), 물은 1톤에 4.4위안(739원), 관리비는 매월 185위안(3.1만 원)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미 와봤던 단지라 대략 알고 있었지만 중개인분께서 어떤 사람인지 볼까 싶어 가만히 들으면서 받아 적었다. 월세는 관리비 불포함에 내가 지인에게 들은 가격대보다 높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2) 스물일곱 번째 방

남향 50m2

다른 동 방인데 이 방도 괜찮다. 그래도 창 밖 뷰 생각하면 첫 번째 본 방이 더 낫다.


“이 방들을 호텔 형태로 쓰는 건가요? 월세로 살 수 있는 거 맞죠?”

“호텔 형태로 쓰고 있지만 월세 가능해요. 호텔 형태의 방은 다른 동에 있어요.”


3) 스물여덟 번째 방

더블룸 형태의 호텔로 쓰고 있는 방. 또 다른 동인데 이 동은 건너편 건물에서 방 안이 다 보이겠다. 내가 들어와서 살 거면 가구는 1인 형태로 바꿔준단다.


“호텔 형태의 방이 다 이 동에 있나요?”

“네, 이 동에 있는 방들은 모두 호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러면 더 볼 필요 없을 거 같네요. 반대편 건물 때문에 뷰도 가려서요. 첫 번째 봤던 방 다시 가볼 수 있을까요?”

아이폰 ‘측정’ 앱이 참 유용!

수납이랑 침대, 소파 길이를 다시 확인했다. 침대는 보위보다 작아 이 방에 들어온다면 지금 배송 중인 이불은 반품하고 다시 사야겠다. 소파가 많이 낡아서 바꿔줄 수 있냐니 그건 힘들단다. 소파 커버를 알아봐야겠네.


“입주 계약하게 되면 누구랑 계약 맺는 건가요?”

“저희 회사랑 맺어요.”

“저는 리엔지아 앱에서 매물을 보고 연락드린 거라 리엔지아랑 계약한다고 생각했어요. 리엔지아까지 삼자로 계약 맺을 수 있을까요?”

“아 저희는 매물 올리기 위해 리엔지아 플랫폼을 이용할 뿐이에요. 3자 계약은 어렵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외국인이라 리엔지아나 워아이워지아처럼 제가 이름 들어본 회사랑 계약 맺고 싶어요.”


중개인분은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한다.

“저희 회사가 리엔지아랑 같이 일해서 리엔지아에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를 소개해줄까요?”


오, 나야 땡큐지. 방을 새로 찾아본다고 지난번 가오더 지도(高德地图)에서 찾은 리엔지아 중개인분에게도 다시 연락드렸지만 매물 찾아주는 것이 영 시원찮던 참이다. 소개를 받아 가면 더 잘 찾아줄 테니까 나로서야 고마운 일. 들어보니 친구분은 다른 지점 소속이라 내가 이전에 연락한 리엔지아 중개인분을 마주칠 일도 없으니 껄끄럽지도 않겠다.


“소개해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럼 제가 친구에게 전화해볼게요.”


친구 분이랑 통화하는데 통화 내용이 다 들린다. 외국인 고객 한 명이 있는데, 소개해줄 테니 방 찾는 걸 도와달라고. 수화기 너머로 ‘나 영어 못해!’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중국어 조금 할 줄 알아.’라며 다독(?)이는 중개인분.


“지금 바로 가도 된대요. 차 태워다 줄게요.”

“ㅇㅇ 단지에 매물 있는 건 맞는 거죠?”

“그렇다고 하네요.”


중개인분이 남자분이어서 순간 차를 타도 되는지 고민했다만 리엔지아 앱에서 활동을 하시려면 이상한 짓은 못 할 거다, 뭔 일 있으면 차에서 뛰어내리면 되겠지, 이 분도 못 믿으면 소개해줄 친구 분도 못 믿는 거다라고 생각하며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리엔지아 지점에 도착. 다행히 아무 일 없었음.

중개인분은 먼저 컴퓨터에서 매물 사진부터 보자고 하셨다. 내가 방을 구하려고 하는 단지 매물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리엔지아 앱에서 사진이 괜찮아 보여 저녁 7시 반에 약속을 잡아둔 방 사진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방! (출처: 리엔지아 앱)

저녁 7시 반에 만날 중개인이 리엔지아 중개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 방도 함께 보기로 했다. 중개인분이게 물어보니 앱 매물 페이지 하단에 나오는 ‘추천 중개인(推荐经纪人)’에서 ‘链家’ 마크가 있는 사람만 리엔지아 소속이라고 한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위에 뜬 사람을 골랐는데 다른 거구나.

‘链家’ 마크 확인


중개인분은 근처 상업지구 건물부터 먼저 가보자고 했다. 지난번 상업지구 건물 냄새 때문에 저녁까지 머리가 아팠던지라 새 건물 냄새나는 곳은 싫다 했더니, 이번에 보여줄 건물은 다른 거란다. 그래서 상업지구 건물부터 걸어가서 보고 내가 보고 싶은 단지 방은 오토바이 타고 가서 보기로 했다.


2. 건물 G

가격: 비쌈

위치: 적당

공과금: 안 물어봄

4) 스물아홉 번째 방

영상만 찍어놔서 캡처했더니 흔들렸다. 남향이고 면적 모름

가격은 역대급으로 비싸면서 딱히 넓은 느낌도 없다. 이 건물은 할 생각이 없어서 면적도 안 물어봤다. 방 밖으로 공사장이 보이길래 나는 공사장 옆은 싫다고 하니 42층이어서 안 들릴 거란다. 하지만 난 이제 공사장이랑은 엮이고 싶지 않다고.


5) 서른 번째 방

이것도 영상 뿐이네. 북향

들어가자마자 담배 냄새가 역하게 난다. 이전 세입자가 방에서 담배를 엄청 폈나 보다. 이런 방은 왜 보여주는 거지. 무조건 패스.


서둘러 내가 눈 여겨보고 있던 단지로 향했다.


3. 건물 E

가격: 적당

위치: 좋음

공과금: 적당

6) 서른한 번째 방

북서향 37m2

이 단지는 무려 세 번째 방문인데 창이 두 개인 방은 처음 본다. 창이 두 개라 개방감은 있지만 창문 바로 바깥이 무슨 철골 구조물이라 의미가 없다. 게다가 한쪽 창문은 북향, 다른 하나는 서향. 공간도 너무 좁고, 거실 공간에 세탁기가 있어서 무척 생뚱맞다.


7) 서른두 번째 방

남향(동남향) 50m2

앱에서 사진을 본 바로 그 방! 누군가가 살고 있는 방이라 정리가 안 되어서 그렇지 가구가 생각보다 무척 괜찮다. TV도 있고 냉장고도 3단이다!

앱 사진 (출처: 리엔지아 앱)

맞은편에 건물이 있어서 아까 점심때 본 방보다는 뷰가 별로지만 풍경 먹고 살 거도 아닌데 뭐. 청각은 가릴 수 없지만 시각은 커튼으로 가릴 수 있으니까. 남향에 이 정도 가구면 진짜 만족이다. 세입자가 4일 뒤에 나갈 예정이라 매물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벌써 몇 팀이나 보고 간 방이란다. 내가 방 보러 가기 전에도 리엔지아 다른 팀이 방을 보고 가서 열쇠를 넘겨받느라 중개인분이 동료에게 연락해야 했으니 말 다했지.


월세는 관리비 포함에 내가 지인 분께 들은 가격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공과금은 물 1톤에 4.4위안(739원), 전기는 1도에 0.996위안(167원)이라니 중개인마다 안내가 좀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하니 무슨 상관이겠나. 공유 오피스텔처럼 따뜻한 물, 차가운 물이 몇 배씩 차이 안 나면 그걸로 됐다.


누군가 살고 있는 방이라 수압이나 난방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보기는 어렵지만 이 단지 자체가 그런 문제는 없다고 들어 입주 날 확인해봐도 되겠다 싶었다. 아까 막간을 이용해 확인해본 주방 수도 수압은 괜찮았으니.  


“집주인분에게 외국인이 살아도 되는지 물어봐주시겠어요?”


더 이상 방을 본다고 이런 방을 찾지는 못할 거 같아 바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중개인분에게 이야기했다. 외국인 세입자를 싫어하는 집주인도 있다고 들어 이 방 주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중개인분이 전화하자 집주인분이 바로 받았다.


“한국인 여자분이고요, ㅇㅇ회사 ㅁㅁ부분에서 일할 거구요, 4일 뒤 현재 세입자분 나가시면 바로 입주하고 싶다네요.”


내가 외국인이다 보니 소속이 어딘지 말해줘야 신뢰감이 생기는 건가. 어느 부문에서 일한 건지까지 자세하게 말해준다.


“혹시 애완동물 안 키우죠?”

통화하던 중개인분이 되묻는다.


“어우, 저 혼자도 돌보기 힘들어요. 애완동물 안 키웁니다.”

손사래를 쳤다.


“집주인분께서 가구를 아껴달라(爱护)고 하시네요.”

“깨끗하게 살게요. 걱정 마세요. 한국에서 살던 방은 5년 살았는데, 관리실에서 퇴실 점검할 때 깨끗하게 살았다고 했어요.”


“집주인분 쪽에서 좋다고 하시네요. 제가 통화한 분은 집주인 대리인인데 다른 도시에 계셔서 계약 날 여기로 오시겠다네요.”

끼야아아아앗호!!!! 다행이다!!!


“네, 저는 최대한 빨리 입주하면 좋아요. 예약금은 얼마예요?”

한 달치 월세요. 보증금이기도 하고요. 월세는 3개월 치를 한 번에 내는 거고요(押一付三).”


나머지 행정 업무는 리엔지아 사무실 가서 처리하기로 했다. 주숙 등기할 때 필요한 1) 집주인 신분증 사본, 2) 부동산 등기증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딸 이름으로 집을 사고, 어머니를 공동명의자로 올려놨더라. 대리인은 아들이다. 얼마 전 찻집 아주머니랑 몇 시간 수다 떨었을 때 중국은 증여세가 엄격하지 않아서 부 이전이 매우 쉽다더니.


중개인분이 집주인 대리인분과 먼저 인사 나누라고 위챗 채팅방을 만들어 주었다.


“아까 집주인 대리인(이하 ‘집주인’)분이 가구를 아껴달라 할 때 쓴 표현이 뭐였죠?”

“爱护(아끼고 보호하다) 요.”

첫 커뮤니케이션할 때는 상대방이 쓴 단어와 표현을 써야지!


“안녕하세요, ㅇㅇㅇ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에요. ㅁㅁ에서 일할 거예요. 방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 아껴서(爱护) 쓸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웃음).”

“안녕하세요, ㅇㅇㅇ예요. 예전에 영국에서 유학해서 여러 국가 친구들과 사귀었어요. 모두 정말 열정적이었죠. 방 임대뿐만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악수).”


친구? 나도 좋지!!

“와, 영국에서 공부했어요? 대단하네요. 저도 국제 친구(国际朋友)가 되면 좋겠네요.”


국제 친구라는 표현을 안 쓰는지 중개인분이 채팅방을 보더니 마구 웃는다. 나는 international friend를 생각한 표현인데.

“이거 중국어에서는 안 쓰는 표현이에요?”

“큭큭큭큭.”


상대방이 웃을 수 있는 표현이면 그걸로 됐지 뭐. 나는 지금 중국 계좌가 없어 계좌 이체를 못하니까 알리페이로 1달치 월세이자 보증금을 예약금으로 미리 내기로 했다. 집주인분 알리페이 계정으로 1달치 월세를 내고 예약금 수령 영수증 받으니 끝!

대금 수령인 이름에 집주인 이름이 들어간다


4일 뒤에 현재 세입자가 나갈 예정이니 5일 뒤 방에서 만나서 관련 사항을 점검하고 계약을 맺기로 했다. 나중에 집에 이슈가 생겼을 때 집주인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괜찮은 분 같아서 한시름 놓았다.


리엔지아 사무실을 나서면서 아까 리엔지아 중개인분을 소개해주신 다른 중개인분에게 연락드렸다.


“친구 소개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방 찾았어요.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온 천사네요.”

“하하, 하늘에 이렇게 뚱뚱한 천사는 없을 걸요.”

“있어요! 제 눈으로 직접 봤는 걸요. 데려다줘서 고마웠어요.”


이 도시에는 참 따뜻한 사람이 많다. 여기 정 붙일 수 있을 거 같아.


그나저나 오늘도 방 보자마자 바로 예약금 걸었네. 잘한 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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