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코로나가 나를 살렸다.

by 잎새

지난여름, 망원동 골목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나는 잔고의 한계를 시험하며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사람이다. 현장성이 중요한 일을 하는 친구는 비대면의 시기에 수입이 끊긴 채 카드를 카드로 막으며 20년과 21년을 보냈다. 나는 30일에 한 번씩 월세 2천만 원이 쌓이는 곳에서 41일 동안 문을 닫고 하루에 15만 원을 벌었다.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는 죽을 상을 하고 술맛을 모르다가 여전히 당황한 채 허둥지둥 헤어졌다.


겨울과 봄을 건너 한여름에 만난 우리는 어딘가 느긋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쌓인 근황을 한참 풀어놓다가 이상한 결론에 닿았다. "코로나가 나를 살렸지 뭐.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방향을 극적으로 바꾸는 일은 없었을 거야." 친구가 꺼낸 예상 못한 말에 내가 말했다. "나도야. 코로나가 나를 살렸어." 우리는 무슨 소린지 알겠다는 듯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모를 매출과 반응이 크게 터졌다. 주말에 몇 시간이고 대기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흐름을 타고 파도가 높게 떠오르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거리두기 1.5단계가 시작됐다. 거짓말처럼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고, 2단계, 2.5단계로 가면서 속수무책으로 기반이 흔들렸다. 거듭된 해제와 규제 속에 숨통이 조금 트였다가도 조여지고, 나아질 것 같다가도 다시 바닥을 보는 일이 반복됐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거칠게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부터 상황을 담담하게 보게 됐다. 걱정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작년 11월에 그대로 상승세를 타고 성공했으면 지금쯤 어떤 상태가 되었을지 종종 상상해 본다. 이제야 사업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따라가는 정도인데, 그때의 설익은 상태에서 성공을 맛봤으면 어떻게 됐을까.


사업이 이런 거구나.

이 정도 인풋을 부으면 되는 거구나.

잘해놓으면 잘 풀리는 거구나.

우리가 꽤나 능력이 있나 보구나.


마치 공식의 답을 찾은 듯 의기양양한 생각이 이어졌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답으로 허세가 섞인 외양을 키워가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큰코다쳤을 거라는 결론에 닿는다. 그때 깨져봤고 지금도 깨지고 있는 덕분에 겸손의 고삐를 붙잡을 수 있었다. 공식이 있는 것처럼 뻔한 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새로 공간을 열면서 입주하게 될 건물을 함께 둘러봤다. 우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공간보다 작은 규모여서 그런지 인테리어와 운영과 매입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힙한 카페로 터지게 해 주세요." 그러자 선호와 내가 잠시 주춤했다. "아... 힙한 거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터지는 건 모르겠어요..."


우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준비는 해줄 수 있는데 터진다는 장담은 할 수가 없어." 집에 돌아와서 자꾸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나중에는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장사 쉽다는 듯이, 사람 쉽다는 듯이, 척하면 척이라는 듯이, 가구 이 정도 놓고 인테리어 업체 잘 쓰고 메뉴 적당히 뽑으면 사람이 올 거라고 말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판데믹의 시대에 겁도 없이 사업에 뛰어든 후, 생계가 위협받고 발판이 흔들렸던 사람을 종종 만났다. 그런데 그중에 코로나로 인생이 망했다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이 환경이 나를 망쳤다고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고, 외부의 일을 탓하지 않고, 코로나가 나를 살릴 수 있게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반복한다. 망해도 망한 게 아니고, 망해도 끝난 게 아니고,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이제는 진심으로 믿는다. 흔들리는 경험 없이도 믿고, 깨지는 경험 없이도 겸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완벽하지 않은 인간은 질긴 싸움 끝에야 체화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코로나가 나를 오만에서 건졌다. 내일을 모르는 나는 오늘을 사는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작은 머리로 가설을 세우고 작은 노력을 시도한다. 모든 불안한 요소와 부족한 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한 번에 한 개씩, 한 번에 한 걸음씩, *광의의 관점에서 이기심을 가지고, 단기적으론 이타심을 보이는 행위를 반복한다. 내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대신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나 역시 무섭다고 고백하는 것. 없는 것을 있는 척하지 않는 것. 친목보다는 신의를 쌓아가는 것. 이 길이 어디에 닿을지 같이 가보자고 이끄는 것.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아는 것. 그렇게 코로나가 나를 살렸다.


*크래프톤 웨이 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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