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하우스를 운영한지 1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갖가지 제안이 왔다가 갔다. 2호점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 볼하우스와 똑같은 볼링장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 큰 공간을 다뤄봤으니 다른 아이템을 시도해보자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또렷한 그림으로 전개되고, 어떤 이야기는 두리뭉실하게 떠올랐다가 물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진다.
사업을 걸음마부터 배워가는 사람에게 ‘제안’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그 모든 이야기는 금테라도 두른 듯 번쩍이는 동아줄처럼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말들이 다 기회인 것만 같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런데 그 휘황찬란한 줄이 몇 번은 잡았다 끊어지고, 몇 번은 잡기도 전에 사라지는 걸 보면서 어쩌면 모든 기회가 나를 위한 기회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힐 기회면 거기에 있고, 내가 잡을만한 사람이면 잡을 것이다. 단순한 원칙으로 상황이 정리되니, 이제는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온다고 해서, 그 줄이 내려오다 사라졌다고 해서 일희일비하지는 않게 되었다.
평범하되 성실한 하루를 채워 가다 보면 어떤 줄은 특유의 선명한 색으로 내려와 자연스럽게 손에 묶였다. 그렇게 진행되는 일들 사이에서 많은 사업가를 만난다. 의뢰를 하고 의뢰를 받으며 구두로만 남아있던 프로젝트를 실물로 실현시킨다.
며칠 전, 지금 진행되는 일과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지금 나와 일하는 사람 중 내 이력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이력서를 보여준 사람도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소개 혹은 우연한 만남 속에서 그 사람이 풀어놓은 몇 개의 과거로 이력서를 갈음하고, 몇 번의 만남으로 서로의 면접을 대신한다.
이력서와 경력기술 없이,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나를 소개한 사람이 신뢰할만한 사람이었기에 나 역시 믿을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사업가로서의 내 이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력을 보지 않는 세계는 나에게 질문한다.
과거의 너는 분명 열심히 살았겠지.
나름의 이력으로 커리어를 쌓았겠지.
우리는 다 열심히 사니까, 대충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너 역시 전력으로 헤매며 노력했겠지.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일을 할까?
이제 너는 '어떤' 역할을 할래?
얼마만큼의 '신뢰'를 보여줄래?
어디까지의 '진심'으로 같이 앞으로 갈래?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유학 경험이 없어도, 대기업에 소속된 경력이 없어도, 지금 당장 이 일을 전력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당신은 면접에 통과했다. 내 얼굴이 이력이고, 내가 하는 행동이 곧 경력 기술인 세계. 면접에 통과해 일을 시작할 수는 있어도 끝까지 해낼 수 없으면 탈락하는 세계. 지금부터 잘하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세계.
이력서를 보지 않는 세계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으면 당장 오늘부터 가능하다. 작은 하나의 노동이 큰 결과로 이어지고, 매일의 정직은 곧 당신 미래가 된다. 쌓아온 성품과 성실이 다음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실력을 입증하는 건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