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0의 가치로 일하는 사람

by 잎새

회사를 그만두고 볼링장을 꾸리면서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는 ‘쓸고 닦는 일’이다. 손님이 쓴 볼링공을 닦고, 테이블을 닦고, 레인을 쓸고, 거울을 닦고, 카운터를 닦고, 복도를 쓸고, 접시를 닦고, 서서 닦고, 엎드려서 닦으며 한없이 쓸고 닦았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엑셀과 씨름하던 제약회사 직원에서 테이블을 닦는 사람이 된 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테이블을 닦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종종 의아해졌다. 화이트 칼라에서 블루 칼라로 ‘내려온’ 기분을 느꼈다. 이런 노동을 하려고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 듣는 사람이 없는 후회를 내뱉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선명하게 들리는 의문을 품고 몸을 움직였다. 장사가 되지 않으면 전단지를 붙이고, 꽁꽁 언 손을 녹이며 입구를 쳐다봤다. 손님을 보면 뛰어나가고, 볼링화를 정리하고, 다시 볼링공과 테이블을 닦으며 종일 실내에 있으면서도 만 보를 가뿐히 채우는 하루를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테이블을 닦는 손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선명하게 들리던 의문이 점점 옅어졌다. 업의 본질을 고민하면 할수록 부수적인 불만이 사라졌다. 노동은 신성할 필요도, 천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의 가치를 논하던 내가 여전히 치기 어렸다는 걸 깨달았다.


볼링장이라는 공간을 손님으로 채우는 것이 목표라면, 테이블을 닦고 신발을 정리하는 일은 노동의 시작도 아닌 0의 전제조건이다. 출발점보다도 더 이전의 것. 미리 세팅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환경. 그 환경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은 신성할 필요가 없다. 천할 필요도 없다.


세상이 화이트와 블루로 나뉘는 줄 알았는데, 그 안에 핑크와 그레이 그리고 내가 아직 보지 못 한 수많은 노동의 층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볼링공을 닦는 나는 블루 컬러인가. 브랜딩을 고민하는 나는 화이트 컬러인가. 광고를 돌리고 하루 매출을 세어보는 나는 천박한가. 사업가들과 10년 후 미래를 논하는 나는 고귀한가. 천박하면 천박한 대로 그것이 왜? 고귀하면 고귀한 대로 그래서 뭘?


8개월 동안 볼링공을 닦았더니, 노동은 ‘그냥’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돈이 많든 적든, 미래가 있든 없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한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지금 한다.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여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내던져본다. 스스로의 가치를 시험해본다. 모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니 남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의 노동은 나만의 것으로 있다. 그냥 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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