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와 주고받은 말들을 바다에 담그면 넓은 바다의 수위가 둥실 높아질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화곡동에 살던 시절을 떠올렸는데, 우리가 너무 어리고 또 너무 오래 만나서 놀랐다. 11년의 시간을 쌓고 보니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낯선 이에게 몸을 담근 처음이 아닌, 서로의 습관과 표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나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의 말 위에 내 말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너의 말을 쌓으며, 한 장 한 장 곱게 쌓인 말의 기와가 우리의 지붕을 이뤘다. 엄지발가락과 눈썹 위 뼈, 손바닥 피부의 감촉 같은, 내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정보를 나만큼 상대방이 알면서 시간이 무르익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사랑의 정의도 방법도 알지 못했는데 어떻게 연애를 했지. 사랑을 모른 채 사랑을 하다가 뒤늦게 사랑의 형태를 이해한다. 아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사랑의 천 가지 갈래길에서 뻗어 나온, 가늘고 보드라운 이 흙길을 오래오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