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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Apr 14. 2024

24년, 4분의 1

1분기 회고

24년에는 혼자 보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구글닥스 하나를 열어두고 어제의 감사와 오늘의 기대를 쓰고, 그날의 인상 깊었던 대화를 캡처하고, 밑줄 그은 문장도 넣고, 배운 점과 반성도 쓰고, 날씨랑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적어두고, 다꾸하듯 하루하루 빼곡히 채웠다. 주말에는 놀기 바빠 일기가 슥 사라지고, 출근하면 다시 일기 생각이 나서 구글닥스의 제목은 '출근일기'가 되었다.


내가 주로 쓰는 일기는 시간이 흐른 뒤에 소화된 감정이 말로 적히는 형식이라, 나는 늘 '오늘은 ㅇㅇ랑 놀았고, ㅇㅇ를 먹었다. 참 재미있었다.' 류의 시의성 있는 일기를 적고 싶었다. <참 재미있었다> 일기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는데, 다이어리는 금세 To Do로 변질되어 포기하고, 블로그는 자꾸만 단어를 골라서 포기했다. 그러다 구글닥스라는 포맷이 손에 딱 맞게 찾아졌고 일기가 꾸준히 이어져서 기쁘다.


1분기에 적은 파일을 보니 4만 자가 적혔다. 4만 자의 생각이 흩어지지 않고 (설령 다시 읽어보지 않는다 해도) 저기 모여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시시콜콜한 뭐 했고, 뭐 했다를 적는 동안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뿌옇게 흐려지고 나만 아는 동굴에 들어가는 기분이 되었다. 찬 공기가 서늘한 동굴에 앉아 '오늘의 기대 3가지'를 적으면 설령 기대할 게 없던 하루여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24년 첫 3개월의 1번은 '출근일기'


2. 회사, 사람

지금까지 다닌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역할을 빠르게 이해하고, 내가 그걸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보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대체로 무리 없이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가 나한테 중요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중요했는데, 일의 시간을 이어갈수록 회사 내에서의 욕구가 중요해졌다. 내가 그걸 중요하게 여겼더니 환경이 천천히 바뀌어 지금 다니는 회사에 도착해 있다.


이 회사에서 "블로그를 봤다."는 이야기를 세 번쯤 들었다. "그 책 봤어요."라는 말은 두 번 들었고, 인스타그램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도 한 명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사람이 내 글을 읽은 건 처음이다. 그래서 회사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거 같고, 사실 그건 중요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회사 안과 밖의 내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24년 1분기의 회고에 출근과 회사라는 키워드가 안전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3. 농도

23년 회고에 인생이 동숲, 같다 적혀서, 24년에는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열겠다고 다짐했는데 결심이 무색하지 않게 사람이 콸콸 들어왔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 않고, 농도가 중요하다. 농도 짙은 대화를 위해서는 간이고 쓸개고 빼주고 싶다는 걸 농도 짙은 대화를 겪어보고서야 안다.

23년 7월에는 이런 메모가 적혔는데, 24년 4월에는 서운한 마음은 없다. 마음을 몽땅 꺼내놓는 대화를 사랑하며 살았다.


4. 결혼관

결혼과 아이, 관계에 대한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해변의 오래된 모래가 대부분 새것으로 바뀌었다. 가임기의 기혼 여성으로 살면서 '아이'의 가능성은 활짝 열 수도 닫을 수도 없는, 복도 끝에 빼꼼히 열려있어 가끔 신경이 쓰이지만 복도 끝까지 걸어가지 않으면 손에는 닿지 않는 문이었는데, '아마도 그 문은 닫힐 것이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세상 일은 모르는 거고, 인생에 절대라는 건 없는 거라서 선언을 미뤄뒀을 뿐, 처음부터 그 문은 열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확신하게 되었다. 가능성이 '없다'는 발판을 꾹 하고 밟았더니, 그럼 나는 이 세팅값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이어진다. 남편과의 삶은 12년째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어린 인간은 추가되지 않는다. 그럼 이 세팅값으로 살 수 있는/살아낼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40대의 삶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 더 나에 가까운 나로 살고 싶다.


5. 의심

요즘은 내가 만들어낸 세계관과 설정, 가치관 같은 것이 전반적으로 의심되어서 사실 위에 쓴 모든 말을 여기에 써도 되는지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떠다니는 말들을 누가 보는 곳에 쓰다가 다시 다 지운다. 내가 쓴 말을 신뢰할 수 없고, 어제의 생각을 오늘 배신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오늘 쓴 출근일기에는 '나는 나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라는 문장이 적혔다. 얼마 전에는 내 계정을 읽은 사람이 '너는 보여주고 싶은 나'가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내 일기를 읽은 사람은 주로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어요?"라고 말해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부지런히 꺼내온 걸까. 사실 일기에 적힌 나는 이미 사라진 나이고, 모든 내가 글로 설명될 수는 없는 거라서 이쪽이든 저쪽이든 상관없기도 하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 모든 사람들, 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에게,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게 제일 궁금하다.


6. 시집

1분기의 독서는 시집과 산문. 운 좋게 두 번이나 연달아 읽고 싶은 시집을 만났다. 밑줄을 잔뜩 그었다.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달력은 4월로 넘어왔고, 오늘의 기온은 28도.

2분기의 삶은 어떤 단어로 찾아올까.


해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시도는 아주 작고
굴리면 굴러가는 것

구르고 구르다가 눈덩이가 된다면

부서지거나 전부 녹는다 해도
물이 되면 그만이다

<순간적>,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좋아하는 문장처럼 살기를 기도하며 적어둔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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