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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Apr 26. 2024

24년, 4분의 1 장면들

1분기 사진 회고

폭설과 함께 1월을 맞이했다. 임유영의 「오믈렛」을 아껴 읽었다.


작년 겨울, 후쿠오카 여행에서 우연히 바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 친구 2명을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여행지에서 스쳐간 인연과 다시 만나는 게 현명한 일일지 고민이 되었는데, 24년에는 모험을 거절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만났더니 세상에 너무 재밌었다. 뱃 속을 그대로 꺼내놓는 이야기가 줄줄 이어지고, 8시간을 같이 있다가 온 세상이 문을 닫고 나서야 헤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완전한 타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 일본 혹은 서울 혹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만날 것 같다.


집과 밖의 눅진한 시간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책을 계속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Q와 함께 있으면 그의 다정한 기운에 안심이 되었다. 나는 늘 그에게서 내게 없는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온다고 느꼈다. 일광욕을 하듯 그 빛을 쪼이며 한 시절을 보냈다.


「오믈렛」의 말들


사무실 내 자리 앞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 건너편 집 정원이 내다보인다. 공들여 가꾸는 정원이라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작은 사치가 되었다. 봄의 초입에는 물까치 떼가 찾아와서 한참을 놀다 갔다. 하늘색 꽁지가 너무 예뻤다.


1분기에는 생일이 있었다. 선호와 현정이 깜짝 파티를 해주었다. 귀여운 애들이 귀여운 짓을 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선호랑 지지고 볶는 날들. 1분기에는 몇 차례 강한 서브를 넣었는데 선호가 유려하게 받아줘서 재밌었다. 이제 보니 얼굴이 작아서 문고본으로 다 가려지네. 좋은 랠리 상대를 만나서 기쁘다.


비슷한 말들을 발견하는 독서


현정이 HUP을 열었고, 개업 축하글을 손으로 썼다. 약수에서 뻗어가는 산책이 금호로 이어지고, 금호에 가면 연두색 대문 너머 노란 불이 켜져 있다.


더 페이보릿을 봤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아름다울까.


해방촌에서 종종 놀고 패스트 라이브즈를 봤다. 유태오의 연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삐그덕 대다가 대충 받아들였다. 엔딩이 좋았다.


연 1회 제비처럼 돌아오는 친구와 즉떡을 먹고 구덩이에 급한 메모를 적었다. 급함이 전해지는 정수리샷.


학고재~국제 갤러리~계동으로 이어지는 산책 코스 정말 천재적이다. 계동에서는 보통 무에에 가는데, 이 날은 뽀얗게 예쁜 정은이 친구와 함께 앉아있었다. 너무 무에에서 만날 법한 사람이라 놀랐지만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포토제닉한 표정이 남고.


1분기 내내 동서남북 외근을 많이 다녔다. 운전석 옆자리와 뒷자리에 실려 떠다니는 날들. 보물세상 구경하고 싶었다.


겨울 지나 봄으로.


요리는 퐁당퐁당 하고, 뽀얀 식재료를 귀여워했다.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나중이라는 시간이 가진 재능. 알 수 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만히 나중을 기다리면서.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의 말들


어느 불금에는 혼자 순대국집에 갔다가 모르는 남성과 합석을 하고 1인 식사를 했다. 심지어 식사를 하는 중간 남성 1은 나가고 남성 2, 3이 두 번째 합석 손님으로 앉았다. 이렇게 또 서울인으로 한층 강해진다.


그리고 좌우지간 만두를 많이 먹었다.


조카들 덕분에 휴일이면 카페나 찾아다니는 안온한 일상에 강렬한 생명력이 첨가된다. 길게 쉬었던 구정 연휴에는 가족이 모인 날만 사진첩의 온도가 달라져서 웃겼다.


이 날은 남산 달리기, 반바지, 노상, 아이스크림까지 한 번에 개시해서 봄 신고식이 되었다. 5월에는 10km 마라톤을 신청해 두었는데 4월 내내 훈련을 게을리해서 뛸 수 있을지 좀 걱정된다. 이번 주말에는 꼭 롱런을 뛰어야지.


집 식탁의 즐거움. 배고프면 대체로 빵이 먹고 싶다.


맥모닝을 가끔 먹었고, 먹을 때마다 행복했다. 오십이 되어도 맥모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지하철 역까지 달려가는 인생을 살 거 같다고 생각했다.




시시콜콜한 뭐 했고, 뭐 했다를 남겨두는 일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사진첩을 터는 기쁨은 있으나, 그 '터는 효용'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24년에는 효용 없는 일, 목적 없는 일, 과정만 있는 일들을 시도해 보고 싶다. 특히 '이걸 해서 뭐 하지' 싶은 일일수록 꼭 해보고 싶다. 어쩌면 힌트는 그런 행동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모아놓고 보니 빼곡히 좋은 3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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