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작은 방의 문을 열고

그래야 내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by 잎새

오늘 아침 출근길에 '네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라는 문자를 보내고 회사까지 걷는 동안,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책으로 보냈는지 돌아보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서른한 살 엄마에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자식 둘이 덩그러니 남았을 때,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엄마의 인생이 나 때문에 발목을 잡혔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내가 아팠을 때도,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매일같이 엄마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을 때도, 밤새 뜬 눈으로 일한 사람이 집에 와 다시 아픈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일이, 그게 온전히 나 때문이라는 것이 마음을 짓눌렀다.


처음 보는 내 손목을 붙잡고 명의가 있다는 병원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아줌마의 얼굴을 보면서, 교과서에 세종대왕이 욕창으로 고생을 했다는 대목이 나오자 나를 보며 킥킥거리던 같은 반 남자애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너는 여름에도 왜 항상 긴팔을 입고 다니냐는 질문에 있지도 않은 햇빛 알레르기를 이유로 둘러대면서, 내 얼굴을 보고 찌푸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온몸에 상처와 벌건 피부를 달고 다니는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화를 느끼는 대신 슬픔이 앞섰고, 당당함을 배우기보다는 나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19살에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는, 물건을 발로 걷어차거나 주먹으로 벽을 쳐 몸을 훼손하는 일이 그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믿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여자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불안한 요소들을 눈 감게 했고, 부서질 듯한 연애의 형태는 내가 품어내는 것으로 메꿔지리라 믿었다. 예전 남자 친구가 협박에 가까운 폭언을 쏟아내며, 수십수백 통의 문자와 메일로 나를 괴롭혔을 때도, 먼저 헤어짐을 얘기한 내가 잘못한 거라 여겼기에 나를 비하하는 말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주는 것으로 그가 진정하리라 생각했다. 두바이에서 근무하며 인격적인 모독이라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는, 내가 스스로 오기로 결정한 나라이며 내가 스스로 근무하겠다 결정한 회사이니 그런 감정들을 참아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입을 막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어떤 바보 같은 일들을 저질렀나. 이제와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는 착각과 아무 의미도 없는 불면의 밤들이었지만, 그게 사실이라 한들 당시의 내가 무슨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6살의 내가, 12살의 내가, 19살의 내가, 24살의 내가, 28살의 내가, 그때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작은 방에 들어가 있는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그 문을 열어줄까. 이건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네가 자책할 일이 아니야. 너 혼자 참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혼자 담아둘 일이 아니야. 내가 옆에 있으면서, 들어줄게. 손을 잡아줄게. 같이 고민할게. 지금에 와 쏟아지는 이 모든 명확한 말들이, 그때의 내 상황에서는 왜 모두 뿌옇게만 보였을까. 어째서 한치의 빛도 찾을 수가 없었을까.


그러니까 과거의 어리석음에 관한 이 짧은 고백은, 나의 과거를 발판 삼아 지금의 너를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네가 헛되이 자책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그래서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네가 반복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이다. 네가 스스로 만들어낼 백 개의 이유들을 백 번씩 잘라내겠다는 나의 의지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자책하지 마. 옆에 있을게. 내가 들어주고, 또 들어줄게. 그 시간 속에 혼자,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네 작은 방의 문고리를 단단히 그러쥐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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