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허벅지에는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엄마, 하고 3번 부르세요

by 잎새

“저 엉덩이 큰 것 좀 봐라.” “엄마 닮아서 그렇잖아.” 우리 사이에는 정해진 대화 수순이 있다. 놀리는 말들은 원망하는 말로 응수한다. 옷을 벗고 몸을 보면, 엉덩이에서 허벅지, 다시 허벅지에서 종아리, 엄마가 새겨놓은 흔적들을 관절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다.


몸을 물려받은 지 30년, 흔적 위로 시간은 켜켜이 쌓여갔다. 시간이 만든 나는 많은 부분 엄마를 닮지 않았다. 엄마가 모르는 맛과 색으로 나의 취향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엄마는 더 이상 내 친구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내가 하는 일을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다. 엄마는 이제 나를 키우지 않지만, 두 개의 곡선이 겹쳐 보이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얼굴 두 개가 늘어선 것보다, 벗은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모녀임을 증명하기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닮은 몸을 생각할 때면, 어쩌면 내가 사는 인생은 나 이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를 뱃속에서 꺼낸 그 몸이 본 것, 먹은 것, 겪은 것들이 내 근육 밑에 혹은 장기 뒤에 빼곡히 쌓여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이전에 이미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낸 시간 역시 나 혼자만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을 것이다.


내 허벅지에는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그 겹은 나의 횟수보다 많다. 꽃은 스스로 핀 적이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 마음의 정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