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고 3번 부르세요
문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엄마는 국민학교를 끝으로 서울로 상경해, 한 달에 이천 원을 버는 식모살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짜장면 한 그릇이 이백 원인 시절이었다. 세 달을 일해 육천 원을 벌고난 후, 엄마품이 그리워 기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것도 못 참고 벌써 집에 왔냐며 타박을 들었다. 가난한 집의 장녀였던 아이는 하룻밤 새우잠을 잔 후 이를 악물고 집을 나섰다. 그게 어찌나 서러웠는지 40년이 지나도록 그날 밤에 대해 하소연을 한다. 외할머니는 어미가 그리 모질었냐며, 40년이 지나도록 낡은 사과를 반복한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와 미용실 시다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가게 안을 채우던 가위질 소리가 잦아들면 열네 살 엄마는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미용실 구석 커튼 뒤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 뒤로도 일을 쉰 적이 없는 엄마에게 남편이 생기고 아이가 둘 태어나고, 그렇게 주부가 되는가 했더니 7년 만에 남편이 저 혼자 세상을 떠났다.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밤잠을 내놓고 새벽 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에게 갚지 않은 빚이 있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엄마는 하던 일에 더해 요구르트 배달 부업을 시작했다. 팔다 남은 요구르트는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갔다. 집에 혼자 남을 때면 단내가 폴폴 풍기는 냉장고 앞에서 입맛을 다셨다. 길에서 보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우리 엄마 직업이라는 게 신기했다. 아이스박스를 끄는 엄마 뒤를 따라 빨대 꽂은 요구르트를 쪽쪽거리며 걸었다. 외삼촌의 사업 보증을 섰더니 빚 위에 빚이 생겼다. 동생과 나는 어른이 되면 돈 빌려달라고 손은 내밀어도 보증 서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십 년쯤 지나 엄마가 낡은 통장을 들고 오더니 다 갚았다, 했다. 식탁에 앉아 한참 통장을 쳐다봤다.
생활환경 조사서를 앞에 두고 모친의 학력을 묻는 질문에 엄마의 대답은 늘 말 끝이 흐려지는 고졸이었다. “그냥 고졸이라고 적으면 돼.” 그때는 '그냥'의 의미를 몰랐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천심만고 끝에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엄마는 배우는 게 좋은 거 같다, 가르쳐서 잘한 거 같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는 나를 가르치는 것에 한 번도 인색한 적이 없다.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와 바로 직장을 구하기는커녕, 돈을 들여 공부를 하겠다 했을 때도 한 마디 반대하지 않았다. 누구에겐들 그러지 않겠냐마는, 엄마에게 세상은 한 번 쉬운 적이 없고, 공짜로 주는 것 없고, 만만한 적 없었던 곳. 가르치는 것이 재산이 될 거라, 다르게 사는 방법이 될 거라 믿으며 키웠다.
그런 엄마가 직장을 잃고, 다시 새로운 곳을 찾는 일이 몇 년에 한 번씩 있을 때마다 엄마는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며 지나는 말을 뱉곤 한다. 엄마가 나이를 먹을수록 한숨은 자기 연민과 함께 밀려온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가끔 검정고시 학원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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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뭘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 걸까, 그런 걸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취한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냥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거든. 너네 둘이랑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았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어. 나라는 사람이 뭘까.” 조금 취한 엄마가 다시 말했다. 말하는 엄마의 눈가가 빨갛게 붉어졌다. 큰 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는 어느 날 출근길에 ‘내 마음의 정거장’이라는 문장이 써져있는 포스터를 봤다고 했다. 구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 센터의 홍보문이었다. 지하철역에 붙어 있던 그 포스터를 엄마는 한참 바라봤다고 했다. 나도 저런 걸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혼란스럽고 서있는 곳의 위치를 모르겠다고 했다.
무작정 올라온 서울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엄마는 돈 버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열두 살을 끝으로 더 이상 학생일 수 없었던 엄마가 마흔을 넘기고 쉰을 지나,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동생과 나는 어른이 되고 이제는 각자의 가족도 생겨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야, 엄마는 '살기'를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나 보다. 사느라 하지 못 했던 공부와 그때 버려야 했던 욕심 같지 않은 소망들이 새삼 서러워 엄마가 아이처럼 운다. 달리는 줄도 몰랐던 다리가 천천히 느려진다. 정거장이 어디인지 물을 사람이 없다.
더듬거리며 울먹이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어쩐지 더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가 엄마를 가르쳐 주어야지. 나를 낳고, 먹이고, 가르친 엄마를, 엄마 얼굴을, 이제 내가 씻겨주어야지. 엄마가 하는 말들을 고운 체에 받아 거기서 떨어지는 마음들을 하나하나 세어보아야지. 작은 슬픔들과, 불쑥 찾아오는 서러움과, 이제는 무엇을 걱정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마음을, ‘정거장’을 찾고 싶은 마음을, 내가 살펴주어야지. 안기는 법을, 안겨서 쉬는 방법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어야지. 나는 하나하나 다짐을 한다.
엄마는 57살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누군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엄마가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