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내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한 뼘의 메일을 받았다. '어젯밤에는 잠을 설쳤습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잠을 설치게 한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과 더 이상 잠을 설칠 수 없어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친구의 마음이 얼마큼 무거웠는지, 무거운 마음을 지고 있지 않기 위해 친구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한 뼘의 문장 속에 쇳덩이처럼 묵직한 직언이 담겨있었다. 메일창에 떠 있는 첫 문장을 보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클릭했지만, 다 읽었을 즈음에는 내가 그렇게까지 놀라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몇 번의 말실수 끝에 입에 남은 쓴 맛을 깨닫고 허둥지둥했던 나를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먼저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기적인 나를 대신해 친구가 먼저 말하게 만든 게 내내 미안할 뿐이었다.
34년 동안 사람을 사귀면서 많은 관계가 떠나고 전복됐다. 내가 먼저 발을 뺀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기도 전에 멀어진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이름이 떠오르면 잠시 따끔하고 아픈 사람이 있다. 이름과 함께 묵념 같은 시간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도 내 이름 뒤에 눈을 감을까. 나는 알고 싶지만, 추호도 알고 싶지 않다. 대부분 사라진 사람은 사라진 채로 있다. 흐려진 사람, 끊어진 사람, 떠난 사람, 잊혀진 사람. 인생의 단계마다 그 시절의 나와 함께 묻은 이름이 조용히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 돌로 새긴 비석이나 그리움의 꽃 한 송이 없이, 과거의 나는 과거에 묻혀 있다.
하지만 친구의 메일을 읽었을 때,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숱한 무덤 사이에서 친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을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메일을 읽은 즉시 내가 꺼낼 수 있는 모든 진심으로, 정확한 사과의 말을 찾아 한 치의 틀림이 없이 전달하려 했다. 부스러기 같은 오해가 바닥에 떨어져 친구가 돌아오는 길을 방해하지 않길. 듣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빌었다.
하루를 기다려 받은 친구의 답장에 엄마가 했던 말이 적혀있었다.
언젠가 잎새씨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세상 모든 게 다 내 것이지만은 그냥 무심하게 두면 그게 내 것이 못 돼. 닦고 쓸고 보살펴야 내 것이 되지. 사람이 곁에 있던 게 떠나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귀중한 줄 알고 대해야 돼.
이 말처럼 잎새씨랑 주고받은 메일이 우리가 서로를 한번 닦고 한번 쓸어주는 것이 되기를.
엄마는 나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어줄 사람인데, 그 엄마의 말을 빌어 철렁했던 마음을 쓸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내가 건넨 사과를 기꺼이 받아주는 손이 귀해서 선뜻 잡지도 못 했다.
곁에 있던 게 떠나가 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비석 없는 무덤을 쌓으며 엄마 말의 의미를 배워왔으니, 이제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울 차례다. 세상 모든 걸 내 것으로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귀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있게 됐다. 무덤과 무덤 사이를 헤쳐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꼭 끌어안는다. 다정한 체온을 건네야지. 무심하게 두지 않고, 닦고 쓸고 보살펴야지. 아둔할 만큼 단순하게, 진심이 통할 것으로 믿어야지. 그리고 나 역시 상대의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 되길. 듣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