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내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분명 엄마 혼자서 나를 만들어 낳은 것이 아닐 텐데, 부모에의 감사 속에 아빠의 이름은 지워진 지 오래다. 언젠가 나는 아빠를 잊지 않았다고 쓴 적이 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대부분 그 이름을 잊고 산다. 결혼식에 부모가 혼자 앉았을 때도 아무런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내 부모는 엄마니까, 나를 키운 건 엄마니까, 와야 할 사람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다. 아빠가 없다는 자각 조차 들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다가,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네 아빠 돌아가셨을 때가 딱 선호 나이였잖아.” 그 말을 들으며 선호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볼이 흠뻑 젖도록 울었지만, 돌아가신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거나 안타까운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그저 내 옆에 앉은 얼굴이 너무 어리고 젊어, 저 앳된 청년이 부인과 자식 둘을 남기고 죽었다는 것에 놀란 마음이 컸다. 아빠도 저렇게 말간 얼굴을 하고 죽었을까. 어린 나는 편부모 가정의 아이로 크는 것보다 가장 노릇을 하는 엄마의 설움에 더 크게 앓았다. 그리고 아빠의 나이를 한 남편을 보며 가슴 철렁하는 어른이 되었다.
선호와 다시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 정말 이상하게도 엄마의 문갑 속에 들어있던 낡은 노트 한 권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엄마가 육아일기를 적은 그 낡은 노트를 넘기다 보면, 어느 날 술에 취해 돌아온 아빠가 휘갈겨 써둔 일기 한 편이 있었다. 이제는 내 삶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이 남긴 일기 한 편. 돌을 넘기지 않은 아이의 자는 모습에서 서른넷의 청년이 본 것. 어쩌면 내가 아는 나의 모든 모습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는 아빠의 나이를 넘어 생을 이어갈 테니 사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후 200일의 아이가 죽은 아빠의 나이를 지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그 이가 지어준 이름을 평생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나는 거창한 미래의 일은 알지 못하지만, 붙어있던 목숨이 다음 날 사라질 수 있음을 안다.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 나의 얼굴을 본 딴 아이도 나 없이 잘, 살 수 있음을 안다. 서른넷의 아빠가 이십팔 년의 부재不在로 가르쳐준 것. 살아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으니,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 가볍게 살라고 하는 사람, 너를 나라고 부른 그 사람을 종종 기억하기로 결심한다.
술에 취한 날 아빠에 일기
잎새야 오늘도 아빠는 술이 취했다
너는 나에 분신이고 나에 모든 것이란다
네가 엄마 뱃속에 들은 날 3개월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빠는 네 이름을 지어 놓았단다
잎새 새파란 잎사귀
넌 항상 새파랗게 자라 달라고 그렇게 지은 거란다
그런데 난 오늘 너를 때렸다
너에 뺨을 때렸다
네가 딸꾹질을 하기 때문에
난 널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 누구보다도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널 때린 거란다
어른도 하기 힘든 딸꾹질을 계속하기 때문에
널 때려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 너무 서럽게 운다
내가 너무 민망스럽게 울어댄다
잎새야 미안하다
네가 많이 커서 이 아빠에 마음을 이해해준다면 얼마나 좋으냐
잎새야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잎새야 제발 이 밤도 잘 자라
1986.6.2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