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험은 나의 힘

by 잎새

나는 공으로 하는 모든 구기에 쩔쩔매며 살아왔다. 공과 내 인연은 피구에서부터 꼬였다. 공 중에 제일 무서운 건 날아오는 공인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 공을 피하거나 받아내야 한다니. 심지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공을 맞고 나가야 한다니, 초등학생에게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주어도 되는 것인가. 피구 라인에만 들어가면 최대한 순한 공에 맞고 빨리 이 시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농구공도 몇 번 튀겨봤고 축구공도 몇 번 차 봤지만, 공은 늘 나보다 의지가 강했다. 한 번도 내 뜻대로 공이 움직인다는 느낌은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볼링장 관계자가 되면서 처음 볼링을 친 날, 점수는 32점을 찍었다. 그 와중에 32개의 핀이 쓰러졌다니 평생에 걸친 공과의 악연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기적에 가까웠다.


9월부터 1월까지 일이 바쁘면 며칠 손 놓기도 하고, 하루에 한두 게임, 상태가 좋은 날은 몰아서 연습을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공을 만졌다. 애초에 잘 치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실력이 늘기를 바랐지만 공이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과 차근차근 시간을 쌓았더니 언제부터인가 평균 점수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번을 쳐도 60을 넘기지 못하던 내 점수가 80, 90 천천히 위로 움직인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100이라는 숫자가 드문드문 나오더니, 어느 날은 120을 훌쩍 넘겼다. 볼링장 관계자가 되어 120이라는 숫자는 내밀기 부끄러운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공과 내 불운을 아는 나는 횡재나 한 것처럼 기뻤다. 공과 이렇게까지 친해져 본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을 쥐는 손이 멀겋게 어색하지 않았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익숙해지고 있는지, 전문가가 되고 있는지 같은 건 굳이 시간을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볼링을 치면서 안 되는 부분과 어려운 점을 얘기할 때마다 잘 치는 친구들이 말한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회사에서 부사수로 들어온 친구들이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나도 말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어느 날, 우리 팀 업무에 유독 쩔쩔매던 친구가 한숨을 폭 쉬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잎새님처럼 할 수 있어요?”


나는 그때만큼은 직장인계의 김연아가 된 기분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해. 그냥 계속하는 수밖에 없지. 너는 처음인데 어쩌겠어. 경험치가 쌓여야지.”


생각해보면 나는 많은 순간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다기보다 세상이 이미 알려줬다.


처음에는 다 그렇고, 유일한 방법은 단 한 줄밖에 없다.

‘계속한다.'


이미 배웠던 정답을 다시 공이 가르쳐준다. 날마다 잊고 날마다 다시 깨우친다.


그렇지만 조금씩 덜 잊고, 더 많이 쌓여있기를.

매일 하는 것들의 힘을 믿고, 경험의 힘을 동아줄 삼아, 오늘도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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