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즈시를 찾아
만화 헌터헌터에 나오는 '즈시'라는 캐릭터가 있다. 헌터헌터의 주인공은 '곤'과 '키르아'라는 두 소년으로, 즈시는 그 두 명이 모험 중에 만나는 어린 남자애이다. 즈시에게는 부사범님이 있는데, 몇 개의 사연이 겹쳐 즈시의 부사범님이 곤과 키르아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가르치게 된다. 두 명은 주인공답게 괴물 같은 체력과 오감으로 즈시가 반년에 걸쳐 배운 내용들을 반나절만에 따라잡는다.
한 번은 즈시가 키르아와 시합을 벌이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키르아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에 즈시는 순간 숨겨뒀던 기술을 쓰려고 한다. 그때 부사범님이 시합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즈시!!!!!!" 하고 이름을 불러 그를 진정시킨다. 즈시는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수련하고 있으니, 지금 한 판을 이기기 위해 기술을 남용하는 것을 자제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즈시는 무섭게 성장하는 곤과 키르아를 보며 조급해지지만, 그럴수록 여느 때와 똑같이 그 날의 기술을 수련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한동안 게으름을 피우던 볼링 강습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감각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초구를 정확한 자세로 치기 위해 기반을 다지고 있는데, 볼링은 점수로 실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스포츠여서 초구를 치고 남은 핀들은 꼭 스페어로 마무리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코치님이 서라는 자리에 서서 연습을 하다가, 스페어가 필요해지면 서는 자리를 바꾸면서 핀을 잡으려 했다. 어쩔 때는 잡히고, 어쩔 때는 잡히지 않는 연습을 반복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오늘 코치님이 한 말씀을 더해주셨다.
"지금은 공이 거터에 빠지든 말든 신경 쓰지 마세요. 스페어 처리도 하려고 하지 마요. 자리를 옮겨가면서 치지 말고, 그냥 똑~같은 지점에 서서 똑~같은 자세로 목표한 지점에 공을 놓는 연습만 하세요."
나는 시합장에 이름이 쩌렁쩌렁 울린 즈시가 된 기분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아직 초구 폼을 잡는 사람이지만, 똑같은 스타트 지점에서 똑같은 투구를 반복하다 보면 열혈 스포츠 만화 속의 문하생이 된 기분이다. 자세와 시선을 신경 쓰며 8파운드의 공을 반복해서 던지다 보면, 금세 온몸이 후끈하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코치님께 "오늘 강습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는 것으로 연습을 마친다. 90도 인사를 하는 것도 문하생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포인트다.
나는 평생을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운동은 요가를 선호하던 사람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안의 스포츠 소녀가 공을 잡고 굴리며 똑같은 투구를 반복한다. 인생은 모를 일. 36살의 즈시는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