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힐 때 열리는 세계
며칠 전 트위터에서 한국 사람들이 거리두기로 제일 힘들어하는 1위가 '9시 이후 다이닝 금지'라는 게 한심하다는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애들은 학교도 못 가고 있는데, 9시 이후에 밥을 못 먹는 게 그렇게 대수냐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많은 답글이 달렸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대형화물을 운전하시는데 밤 9시가 넘으면 고속도로 휴게소며 식당 모두 문을 닫아, 차갑게 굳은 떡이나 퍽퍽한 단팥빵으로 끼니를 때우시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퇴근하면 9시, 10시인데, 편의점 삼각김밥마저 다 나가 있을 때면 힘이 쭉 빠진다고 했다. 밤 9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는 퇴근하면 이미 파김치 상태여서 그때부터 요리를 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볼링장에 와서 처음 알았다. 나인 투 식스의 밖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눈으로 목격했다. '첫차를 타면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같은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비율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발 디딜 틈 없다'의 정의가 이렇게 현실인 줄 몰랐다.
그전까지 나는 나인 투 식스로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이 세상의 80퍼센트 정도 되고, 나머지 20퍼센트가 그 시간 밖의 사람들로 채워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남들 그러니까 나인 투 식스의 사람들이 퇴근할 때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사람이 있다. 나인 투 식스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일하는 사람이 있다. 나인 투 식스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밥을 먹는 사람도 있다. 나인 투 식스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노는 사람도 있다. 아주 많다. 왜냐하면 퇴근이 밤 11시인 사람도 있으니까. 새벽 2시인 사람도 있으니까. 나인 투 식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소중하듯, 그 밖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퇴근 후 삶'은 소중하니까. 6시 퇴근 밖에 사람이 있고, 생활이 있었다. 나도 그걸 눈으로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니 나인 투 식스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 밖을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다. 나도 몰랐으니까. 눈으로 보기 전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시계 밖의 사람에게는 일상이 걸린 일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먹고사는 문제인 줄 몰랐으니까. 내 퇴근이 소중한 만큼 그 사람의 퇴근도 소중하다는 걸 몰랐으니까.
우리는 가끔 세계 밖의 사람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내 세계가 닫힐 때, 그제야 열리는 세계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언뜻 보기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들여다보면 거기 사람이 있다. 아니 들여다보지 않아도, 뭐든지 저절로 되는 일은 없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거기 당연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어느 세계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대충 본 것으로 값어치를 매기고 있지는 않은지, 볼 생각도 보려는 노력도 않는 건 아닌지, 나인 투 식스의 밖에서 또 그 밖을 생각한다. 당연히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