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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 Sep 07. 2015

끝, 그리고 다시 시작

이틀 전, 그러니까 9월 3일, 타임잇 프로젝트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앱스토어에 마음에 드는 공부 시간 기록 앱이 없어서 안드로이드 개발 공부도 할 겸 직접 만들어 보자며 같은 연구실 친구와 넷이서 함께 앱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2013년 1월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타임로그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대충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앱스토어에 올려두고는 한동안 논문이니 과제니, 다른 바쁜 일들에 치여 업데이트를 거의 하지 못하고 방치하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반쯤 버려져있던 앱의 사용자가, 늘어났다.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나던 다운로드 숫자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던건 사용자들이 남긴 앱스토어의 댓글들이었다. 앱 너무 좋아요, 예뻐요, 편해요, 이 기능도 추가해주세요. 그런 메시지들을 읽으며 계속 버려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조금씩, 하나씩, 앱을 업데이트했다. 


그러다가 내가 책임을 맡았던 연구실의 큰 과제가 끝났다. 몇 년간 같은 곳과 해오던, 정말이지 중요하고 큰 과제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선언을 하셨다. 이제 한동안 이런 큰 과제는 하지 않겠다며, 요즘같은 시대에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면서 남들이 만들어달라는 것만 만들고 있을 수 있냐며, 우리 만의 것을 하자고 하셨다. 그 때 생각했다. 타임로그를 제대로 해보자. 대충 공부하는 셈 만든 그런 앱이 아니라, 진짜 프로가 만든 것처럼 제대로 만들어보자. 상상으로 끝났던 그 기능들을 실제로 만들어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타임로그의 새로운 버전, 타임잇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데는 비전이 중요하고, 그걸 한 줄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던데 그건 아직도 잘 못하겠다. 다만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하루에 한 시간은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을 돕고 싶었다. 그들 모두를 돕는게 너무 큰 꿈이라면, 최소한 대학원생에게는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들이 좀 더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그들이 행정서류 처리와 예산 관리에는 시간을 덜 쓰고, 대신 논문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잠이라도 한 시간 더 잘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사회를 좀 더 발전시키는 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 대학원생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그들을 돕고 싶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만들었다. 모든 면에서 정말이지 멋진 앱이 되었으면 했다. 타임로그의 레거시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앱의 첫화면부터 다시 만들었다. 사용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가장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데 집중했고, 앱 내부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코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돈에 대한 욕심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단지 사용자들이 직접 기록해 준 시간,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이면 무언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거라 믿었다. 고민은 했지만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혹시 정말로 그러한 시간의 기록들이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나와 같은 대학원생,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혹은 취업을 준비하는 고시생, 그런 사람들에게 이 앱은 확실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그러면 세상에 좋은 일 했다고 치지 뭐,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타임잇으로 제출한 이공계창업꿈나무 과제의 제안서가 통과가 되면서, 우리는 정부 과제의 지원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당장 내가 밥먹고 살 돈이 들어올 곳은 부족하나마 생겼으니 정말이지 세상에 좋은 일 해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즈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걸 정말 사업으로 확장시켜 볼까.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앱 정도를 넘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앱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사업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이공계창업꿈나무 과제는 본질적으로 기술개발과제였다. 우리가 상상했던, 그래서 제안했던 그 기능들을 구현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게 사업이 되는 아이템일까. 


그 결론의 데드라인으로 정한 것이 8월 31일이었다. 그때까지 고민해보고, 여러가지 시도해보자. 그리고 그 결과들을 보며 결정하자. 우리끼리 그렇게 정했었다. 그리고 이틀 전, 그렇게 결정했다. 타임잇은 사업성이 없다. 그래, 그만하자. 


공부 시간 기록 앱을 만드는 게 어떨까,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던 시절, 이런저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며 회의를 하던 그 때부터 따지면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고민하고, 만들고, 힘들어하고, 행복했던 그 경험들, 그 결과물을 이제는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그만하자. 


8월 말, 이제는 더이상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일 때, 이제는 멈춰야할 때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던 그 동안 많이 심란했다. 뭘 잘못했던 걸까, 더 잘할 수는 없을까, 이렇게 끝나는 걸까, 여기까지인 걸까, 이정도면 열심히 한 거야, 괜찮아, 많이 배웠잖아... 오히려 결정할 때는 담담했다. 사실 우리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단지 그 결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 타임잇을 만들면서 정말이지 많이 배웠으니까, 이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타임잇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타임잇은 앞으로도 계속 사용자들에게 제공이 될 것이고, 가끔 업데이트가 될 수도 있다. 이공계창업꿈나무 과제에 제안했던 기술들 역시 계속 개발을 해야 한다. 단지, 이 아이템으로 사업은 하지는 않을거다. 이제는 정말 돈이 될 것 같은 무언가를 찾아서,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시킬 수도 있는 그런 것을 무언가 찾아서, 그것에 다시 집중을 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타임잇은 애초에 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건 돈을 벌겠다고 만든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필요해서 만든 앱이었고, 그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줬고, 내가 만든 앱을 누군가 써준다는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게 좋았던 거니까.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새로운 기능을 만들며 사용자들이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걸로 됐다. 


사용자로부터 받았던 피드백 메일이 하나 기억난다. 고3 기간 동안 타임잇으로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서, 지금은 대학을 잘 다니고 있다는, 감사하다는 메일이었다. 그 메일을 받고서 참 기분이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감사하다는 인사는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내가 우리 앱의 사용자 분들에게 드려야하는 것이었다. 


타임잇을 만들면서 저에겐 과분한,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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