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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 Sep 08. 2015

마케팅 따라하기

처음이었다. 나는 마케팅이란 걸 해야했다. 우리 앱은 사용자들로부터 호평 일색이었고, 높은 평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운로드 수는 원하는 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앱이 사용자가 늘지 않는건, 그래, 그들이 우리 앱을 모르기 때문이야. 그러고보면 우리 앱을 어딘가에 홍보해본 적이 없었다. 오래 전 타임로그를 만들 때, 앱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서 주위 대학에 붙이고 다녀본 적은 있는데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역시 마케팅이란 걸 해야겠어. 제대로.  


마케팅에 대해 들어본 것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공대생 치고는 마케팅이니 뭐니 하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신발 속에 들어가는 에어가 얼마나 푹신한 지를 보여주는 대신 운동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보여주는 나이키의 CF에 감탄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막상 내가 하려니 막막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돈이었다. 나는 돈이 없었다. 


TV나 신문 광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케팅이란 건 그런 곳에 광고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그럴 돈이 없으니 좀 더 싼 것을 찾아야 했다. 우리의 타깃 고객층이 가장 즐겨보는 잡지, 가장 많이 찾는 장소, 그런 곳에 무언가 광고를 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다들 너무 비쌌다. 아무런 돈도 벌지 못하는 무료 앱을 홍보하기 위해 몇 백만원을 쓸 수는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마케팅과는 조금 달랐지만, 돈이 없던 우리가 결국 선택한 것은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보잘 것 없는 방법들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앱스토어의 모든 리뷰 댓글과 모든 이메일 피드백에 하나하나 성실히 답변을 달기로 했다. 사실 이건 그 이전부터도 행해오던 것이었다. 피드백을 주는 사용자들, 그들은 최소한 우리 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앱에 평점을 매겨본 적이 없었다. 댓글을 달아본 적은 더더욱 없었고, 피드백 메일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게 칭찬이든 욕이든 간에 무언가 피드백을 남겨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고마웠고, 소중했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주는 건,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타임로그를 만들 때 종종 방치되어 있다 보니 사용자의 리뷰에 대한 댓글을 달아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었는데, 그 경험 덕분이기도 했다. 타임잇을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러기로 했었다. 우리 모든 리뷰에 댓글을 달자고, 모든 피드백 메일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자고. 이게 바로, 우리가 선택했던 첫 번째 마케팅 방법이었다. 우리 앱에 피드백을 남겨준 사람들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방법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블로그 운영 역시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니까 우리의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우리는 글로벌한 서비스를 목표로 앱을 만들고 있었는데 영어로 블로깅을 하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한글을 선택했다. 아쉽지만 외국 사용자들에게는 제공할 수 없었다. 역시 영어를 잘해야된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블로그에 단순히 이번 패치 내용이 어떻고, 개발팀에 누가 합류했고, 이런 내용을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사용자들에게 소소하지만 즐거움과 재미를, 혹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언가 거창한 이야기를 쓰는 것도 말이 안된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까, 결국 우리는 '타임잇 만드는 이야기'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었다. 누군지 모를 타임잇 개발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뭘 고민하고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적어나가기로 했다. 슬럼프에 빠져 있으면 슬럼프에 빠졌다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신나는 일이 있었다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기로 했다. 그리고 블로그로 가는 링크를 앱 안에 넣어두었다. 그걸 과연 사용자들이 읽을까? 우린 읽을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앱의 사용자들은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대학 생활을 했던 취준생/고시생,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대학원생들, 혹은 그런 대학에서의 생활을 동경하는 고등학생들이 우리 앱의 주된 사용자층이었다. 우리의 하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그들이 좋아한다면, 우리 앱에 대한 애착도 높아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비슷한 생활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앱이라고 그들이 느낄 수 있을테니까. 게다가 ASO의 효과도 노릴 수 있었다. 시간 관리 앱과 관련된 컨텐츠를, 타임잇에 대한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면 관련 검색어에서 구글의 검색 상위에 노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 번째 방법이 그나마 가장 마케팅다운 방법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앱을 홍보하기로 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썼다. 먼저 마치 요즘 피키캐스트에서 많이 만드는 컨텐츠들처럼, 시간 관리와 관련된 조언들을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열심히 뒤져 찾아낸 후 재미있게 엮어서 옆으로 하나씩 넘겨보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컨텐츠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페이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공유되도록 했다. 지인들이 특히 많이 공유해줬다. 두 번째 방법은 실제로 돈을 써봤다. 클릭하면 우리 앱을 바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설정을 해서 페이스북에 유료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20일 정도 진행했던 것 같고, 총 20만원을 들였다.  


우리는 세 번째 방법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 무엇보다 돈을 썼기 때문이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은 바람직한 태도일 수는 있으나 많은 사용자들에게 우리 앱을 알리기에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마케팅에 큰 돈을 쓸 수 없던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들이라 생각했다. 역시 세 번째 방법처럼 돈을 좀 써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20만원이 아니라 200만 원을 쓸 수 있었으면, 2천만 원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방법들은 굉장히 바람직한 시도였고,  오히려 기존의 마케팅 방법들을 따라하려 했던 모든 시도들이 완전히 잘못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위에서 첫 번째 방법인 사용자 리뷰에 하나하나 다 답변을 한 것과 두 번째 방법인 블로그를 운영한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했던 고민들과 방향 선택은 굉장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 번째 페이스북 마케팅은 완전히 실패했다. 


페이스북 마케팅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먼저 우리가 만든 피키캐스트 류의 컨텐츠는 단지 우리 주위의 지인들만이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눌러줬다. 수많은 지인의 도움 덕분에 수천 명에게 컨텐츠가 전파되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 중 이 컨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기를 누른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20만원을 사용했던 유료 프로모션은 더더욱 참담했다. 우리의 광고는 수십만 명에게 노출이 되었는데, 그들 중 우리 컨텐츠를 눌러본 사람은 겨우 1% 정도였고, 그들 중에서 우리 앱을 실제로 설치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페이스북의 매출을 20만 원 올려줬을 뿐, 우리가 얻은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었던 셈이었다. 사실 20만 원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단 한 명이라도 우리 앱을 설치할 때 까지 광고를 계속 해보자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20만 원이 나가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20만 원이 넘어서자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는 좀 달랐다. 매일매일 최소한 30명 이상은 우리의 글을 읽어 주었고, 가끔은 100명 넘게 블로그를 방문하기도 했다. 신기능을 추가해 달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 우리가 붙이고 다녔던 홍보물을 학교에서 봤다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종종 회식을 하던 단골 음식점을 자신도 좋아한다며 댓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외부에서 검색어 등을 통해 유입되는 비율은 거의 없었다. 전부 우리 앱을 통해 우리 블로그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매일매일 우리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수가 약 1200~1400명 정도 되고, 그 중에서 대한민국 사용자의 수가 50% 정도 되는데, 그러니까 매일 매일 우리 앱을 사용하는 600~700명 정도의 대한민국 사용자 중 5~10% 정도, 가끔은 20% 정도가 우리 블로그를 본다는 말이 된다. 충분히 높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의미있는 수치였고, 최소한 20만원을 페이스북에 기부한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접근법이었다. 


사용자들의 피드백 하나하나에 모두 답변을 한 것은 그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답변을 다는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확실히 고마워하고 있음을. 그들이 제안한 새로운 기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으면 그들은 그림까지 그려서 사진을 찍어 메일을 다시 보내주기도 했고, 고쳐달라던 기능이 이번 패치에서 고쳐졌다며 평점을 올려서 댓글을 다시 달아주기도 했다. 하나하나 댓글을 다 달아주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며 댓글을 달아주신 분도 있었다. 그런 피드백을 볼 때마다 우린 힘들다가도 기분이 좋아졌고,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우리가 정말 누군가에게는 정말 도움이 되는 앱을 만들고 있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답변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충성 고객을 만들어내었는지, 혹은 얼마나 사용자들을 오래 붙잡아 두었는지는 계산할 수 없지만, 피드백 메일들을 보며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저런 긍정적인 감정들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는 작은마케팅클럽이라는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고, 그 세미나 강사님이 추천해준 그로스 해킹이라는 책을 얼마 전 읽게 되었다. 그 책에 대한 소감은 아마 며칠 뒤에 따로 포스팅을 하게 될 것 같다. 세미나에서 배운 내용, 그 책에서 읽은 내용, 모두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이 정말 옳은 것들이란 걸, 그리고 세 번째 방법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걸. 고객에 집중해야 하고, 모든 것은 측정되어야 하며, 제품 자체가 마케팅의 기반이 되어야하며, 가설을 빠르게 검증해가면서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정교화시켜야 한다는, 그런 내용들을 사실 우리도 잘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적인 그로스해킹의 예로 들고 있는 사례들도 우리와 같은 동기에서, 같은 접근법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마케팅에 쓸 충분한 돈이 없었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는 마케팅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타임잇 프로젝트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바람직한 방향으로 걸어왔다. 주위에서 다들 어떻게 하든 간에, 우리끼리 치열하게 고민하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던 대부분의 것들은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져왔다. 오히려 남들이 다 이렇게 하니까, 그게 맞다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흉내를 내려했던 것들은 대부분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물론 우리가 대단한 성공을 거뒀던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실패한 셈이지. 그래도 이런 경험은 제법 괜찮았던 것 같다. 실패 속에서도 배울 점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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