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을 처음 이용한 건 새로 구매한 휴대전화에 딸려 온 무선 이어폰 때문이었다. 박스도 뜯지 않은 채, 곧바로 글을 올렸다.
‘(미개봉) ㅇㅇ 무선 이어폰 팝니다.’
주변에서는 잘 팔린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사진도 정성껏 찍었고, 가격도 시세보다 저렴했는데. 문제는 36.5도라는 온도였다. 당근마켓은 거래 이력과 평가를 바탕으로 ‘매너온도’라는 신뢰 지표를 매긴다. 거래 이력이 없는 나는, 당근마켓의 세계에서 아무런 검증이 되지 않은 존재였다.
가격을 내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드디어 채팅 알림이 떴다.
“안녕하세요. 구매하고 싶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정중한 인사. 상대방은 내내 예의 바른 말투로 이야기했다. 시간을 정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다 보니 그가 꽤 먼 곳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낮추려던 가격으로 호의를 보인 셈이었다.
그런데 거래 당일, 갑자기 채팅이 왔다. 시간을 앞당겨도 되는지, 장소를 바꿔도 되는지, 부모님이 대신 가도 되는지. 상대방이 학생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학생은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를 오려 했다가, 부모님에게 혼이 났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그렇게 멀리 가냐’며 실랑이 끝에 결국 부모님이 대신 오기로 한 것이었다.
내내 예의 바르던 말투는 혼란스럽게 바뀌었다. 자신의 계획이 예상치 못하게 뒤틀리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황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학생을 달래며 부모님과 대신 통화하겠다고 했다. 시간과 약속 장소를 바꾸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믿고 먼 거리를 나서려 했던 학생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흰색 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 멈췄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갑자기 먼 동네로 나와 거래해야 하는 상황에 덩달아 혼란스럽던 학생의 부모님은 거래를 마친 뒤에야 한결 누그러졌다.
“아이가 얼마 전 용돈을 모으더니 이걸 사고 싶었나 봐요. 혼자 갑자기 길을 나서겠다고 해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어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걱정이 앞섰을 부모님의 마음도, 혼자 해보려다가 일이 커져 난감했을 사춘기 소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에게 선물이 도착했다. 아주 길고 정성 가득한 첫 거래 후기였다.
“저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 되었는데,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나도 답장을 남겼다. 거래해 줘서 고맙다고, 오래오래 잘 쓰길 바란다고.
그 이후 내 거래 온도는 올라갔고, 정성 어린 첫 후기를 시작으로 다른 거래들도 수월하게 이어졌다. 현재 온도는 42.5도. 이상하게도, 거래 경험이 많아질수록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직거래만 합니다. 네고는 사양합니다.’ 점점 신뢰의 값이 비싸진다.
상대의 온도를 보며 망설일 때마다 나의 첫 거래가 떠오른다. 아무런 의심 없이 건넸던 믿음.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던 내 마음.
그 마음을 담아 거래 글 끄트머리에 한 줄을 덧붙인다.
“학생이면 1만 원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