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직면하는 장치

<해리포터> 펜시브, 군산 동국사 참회비

by 이표



편한 사람들과 누군가의 뒷담화를 했는데,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 바로 내 뒷자리에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불편하고 부끄러운 일이 있나. 사과할 용기는 없어 그대로 줄행랑쳤다.


함께 뒷담화에 동조했던 이들과 만나면 그때의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단체로 뒷담화를 ‘즐기던’ 머쓱한 일이 서로 기억에서 지워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품위를 유지하는 또 다른 방법은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그에 대해 좋은 얘기도 했고, 그렇게 세게 욕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했던 말이 들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자기 얘기라고 생각할 만큼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모를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나의 잘못으로 인해서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기억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이때, 나의 잘못을 계속 상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 사람이 너무 불편하고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물며 잘못을 직면하는 장치를 항상 보는 장소에 둔다면, 과연 그 장치를 부수지 않고 배길 수 있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펜시브’와 군산 동국사의 ‘참회비’는 나의 잘못을 직면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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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호레이스 슬러그혼 교수는 악당 볼드모트에게 ‘호크룩스’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살인을 간접적으로 조장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호크룩스는 시전자가 자신의 영혼을 여러 개로 쪼개어 물체(생명체)에 담아 여러 목숨을 보장하는 마법이다. 이를 제작하는 방법은 살인이다. 그것도 상대를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가장 악랄한 의도를 담은 살인. 볼드모트는 무려 6번의 살인을 저질러 영혼을 7개(실은 8개)로 쪼갠다. 그렇게 연장한 목숨으로 많은 사람을 해치고 또 죽인다. 구미호의 꼬리처럼 볼드모트는 호크룩스가 다 사라진 후에야 죽는다.


사실 슬러그혼은 억울할 수도 있다. 슬러그혼에게 묻기 전부터 볼드모트는 호크룩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슬러그혼은 교수로서 자신의 애제자 톰 리들(볼드모트의 본명)의 학문적 호기심을 빙자한 질문에 답을 해줬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답이 훗날 최악의 악당이 될 자에게 결정적인 정보가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 법상으로도 살인 교사나 방조죄 같은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많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 기억을 왜곡하는 방법을 택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절정’ 단계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편에서는 이 기억 찾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말’에 볼드모트를 확실하게 끝내는 방법이 담긴 기억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해리가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기억 정보를 ‘펜시브’라는 장치를 통해 마주한다는 것이다. 펜시브는 은빛 물질이 가득한 대야 형태로, 사람의 관자놀이에서 꺼낸 기억을 펜시브 안에 넣으면 그 기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사실 펜시브는 굳이 따지면 불필요한 장치다. 슬러그혼은 “톰 리들과 호크룩스 이야기를 했다. 내가 결정적인 정보를 확인해 주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굳이 기억을 작은 병에 담아 해리에게 건네주고, 해리는 이를 펜시브에 부어 확인한다. 물론 이전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요긴하게 쓰인 장치를 그냥 한 번 더 쓴 걸 수도 있지만, 흘러가는 말이 아니라 어떤 장치를 거쳐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쉽게 외면할 수도 없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며, 왜곡할 수도 없게 정직하게 새겨져 있다.







참회비(참사문비).jpg 출처 : 연합뉴스, 동국사 참회비(참사문비)


국내 몇 안 되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도 이러한 직면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참회비(참사문비)가 바로 그것이다.


전라북도 군산의 동국사는 일본 불교 종단 조동종(曹洞宗) 승려에 의해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해방 후 우리나라를 뜻하는 ‘동쪽 나라의 절’ 동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2012년 9월, 조동종 소속 일본 승려 일부가 동국사에 참회비를 세웠다.


보통 산에 있는 절들과 다르게 동국사는 낮은 언덕을 오르면 곧바로 소담한 건물 몇 채가 보인다. 두 개의 기둥 너머 오른쪽으로는 대웅전이 있고, 바로 정면에 2015년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보인다. 그 뒤편에 참회비가 있다.


가로 3m, 높이 2.3m 크기로 세워진 비석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이는 조종동이 1992년에 발표한 동일한 내용을 20년 만에 동국사에도 비석에 새긴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외포교라는 미명 하에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 침해, 문화멸시, 일본 문화 강요, 존엄성 훼손 행위가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나며,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이며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 (출처 : 현대불교)


종교인으로서 일제 만행을 말리기는커녕, 이에 편승하여 황국 신민화 교육에 앞장선 것을 사죄하는 글이다.


군산은 일제강점기를 잊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가득한 도시다. 항구 도시로서 겪었던 일제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며 도시 전체가 증언한다. 다만, 일본식 건물을 그대로 남겨놓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논란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는 잊고 일본식 건물을 ‘체험’하는 관광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이 참회비의 존재가 중요하다. 외면할 수도, 왜곡할 수도 없이 새겨진 장치 말이다.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말은 패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나는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회피하고 왜곡해 왔을 것이다. 잘못을 마주하기보다 화를 내는 쉬운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컴퓨터 화면과 종이라는 펜시브에, 피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글자들로 참회비를 세우는 것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을 ‘밤마다 밤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겠다는 마음으로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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