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은 화려했다. 으리으리한 호텔 식장 복도에 축하 화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친구 하나가 테이블마다 놓인 생화를 보며 말했다.
“돈 정말 많이 들인 것 같네.”
“응?” 내가 생각지 못한 화려한 결혼식에 계속 놀라자, 친구는 말했다.
“얘, 강남 8학군 출신인 거 몰랐어?”
나는 신랑 측 하객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신랑과 나는 20대 초반에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철학부터 현실까지, 우리의 생각은 늘 달랐다. 남의 말을 들을 만큼 아직은 말랑한 귀를 가졌기에, 열띤 토론을 마치고 나면 소주 한 잔으로 감정을 털었다.
그렇게 서로의 신념을 공유한 사이였으므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 많은 인원이 여전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아리원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형제 관계, 부모님의 직업, 결혼 상대와의 연애 스토리까지도. 지난 십여 년 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왔길래, 이다지도 서로를 몰랐을까.
결혼식을 마치고 하객으로 참석했던 사람끼리 따로 모였다. 자연스럽게 다음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의 말이 이어졌다. 예비 신랑과 어떤 갈등이 있고, 방향을 맞추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상대 가족에게는 개혼(형제 중 첫 결혼)이지만, 친구네는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생긴 문제였다.
“너 동생 있었어?”
“응, 남동생. 몰랐나?”
십 년을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처음 알게 되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때, 다른 친구가 덧붙였다.
“그래서 더 편하고 좋지 않아? 나도 너희 지금 어떤 일 하는지만 알지, 나머지는 몰라.”
‘모르니까 더 편한 관계’라. 하긴 그랬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를 공유하다 보면 때로는 위안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의 찌꺼기가 따라붙기도 한다. 게다가 친구라고 해서 꼭 모든 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우리 관계가 흔히 생각하는 ‘친구’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관계는 책을 매개로 만난 또래 동아리원이다. 친구라는 말보다 더 느슨한 이름이 어울리는 관계. 그런데도 이상하게 편하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이런 관계는 무수히 많다. 가깝게 잘 지내던 직장 동료, 시험을 준비하며 만났던 스터디원, 강의를 함께 들은 동기들. 다 알지 못해도 괜찮은, 오히려 편안한 사이. 가정사를 깊이 나누지 않아도, 현재를 공유하며 그 순간을 응원하는 사이.
우리 관계는 완전하지 않았다. 서로의 아픔을 모르고, 꿈도 모르고, 심지어 가족도 몰랐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무겁지 않은 관계, 부담 없는 우정. 어쩌면 이것도 인연의 한 형태가 아닐까.
보통 이성 친구와의 인연은 결혼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혼하는 동아리원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함께 만나는 일도 줄었다. 나는 조심스레 예감한다. 이번 결혼식 주인공과도 인연이 이렇게 끝나리라.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로 걸어왔다.
그 모름으로 인해서 우리의 인연이 비로소 아름답게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