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 판도라에 갇힌 상상력

콘텐츠 분석

by 이표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오긴 오나 보다. 올해 12월 <아바타 3:불과 재>가 드디어 개봉한다. 나 역시 기대감을 안은 채로 12월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우려도 있다. 기존 아바타 시리즈가 기술 혁신을 열었지만, 서사는 아주 꽉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아바타 시리즈는 전 세계 대중문화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1편이 개봉되었을 때 압도적인 3D 기술과 파란 피부의 외계인 이야기는 어디서나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뼈대는 단순했다. 그 스토리 골조는 미국인(감독은 캐나다 태생) 침략자의 사상을 따라간다. 원주민을 침략하려는 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화하려는 자. 전자는 악인 후자는 선인으로 묘사되지만 둘 다 시혜적인 인간 군상임은 변함없다.


물론 남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원주민을 존중하고 따르며 결국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어쨌든 백인 남성이다. 본인이 살던 지구에서는 사회의 일원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던 사람, 즉 내 세계에선 ‘루저’였는데 다른 세계에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라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른다. 게다가 설리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전형인 군인 출신이다. 이는 백인 남성 캐릭터가 비백인 캐릭터를 구원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화이트 세이비어(White Savoir)’ 서사이다. 자연스럽게 1990년 영화 <늑대와 춤을>과 1995년 애니메이션 영화 <포카혼타스>가 연상된다. 1편 개봉 당시에도 압도적인 영상미 평가는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선민사상은 우려되었다.





2편은 어땠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마블의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와 비교되어 더 화제가 되었다. 하필 파란 종족, 바다라는 설정이 겹쳤는데, 예산 부족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화면 대부분을 어둡게 처리해 버린 <블랙팬서>와 눈이 부시도록 쨍하고 아름다운 <아바타>는 비교조차 실례였다.


10년 넘게 기다린 관람 경험은 황홀했다. 그 사이에 두 배가 넘은 값을 치르고 용산의 큰 화면에 빠졌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답답함이 남았다. OTT로 다시 보며 감동과 별개로 따라붙는 감정을 곱씹게 되었다.


일단, 너무 뻔했다. 가장 내 마음을 식힌 장면은 주인공 제이크 설리의 두 아들이 다른 집 아들들과 주먹다짐을 해서 이를 혼내는 대목이다. 작품 중 관객에게 공감을 유도하며 웃음을 주려는 장면이다. 제이크는 큰아들에게 동생을 말리기는커녕 함께 말려들어 싸웠냐며 나무란다. 그때 상처를 단 얼굴로 주눅 든 아들을 보며 제이크 설리는 말한다.


"그래서 이겼냐?"

아들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걔네 얼굴은 더 심해요."


이겼다는 말이다. 아버지 제이크 설리는 아들한테 까불지 말라는 듯 가볍게 타박한다. 관객들은 웃는다. 아, 어디선가 수없이 본 장면이다. 미국 대중문화가 수십 년간 되풀이해 온 낡은 농담이 다시 등장한 셈이다.


거장 제임스 카메론은 왜 이런 고리타분한 유머를 답습했을까. 바로 아바타2가 진부한 근본적인 이유와 이어진다. 그는 이 영화 속에 가족애를 담았다.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무조건 통하는 그 법칙이다. 아무리 머나먼 우주여도 수백 년이 흐른 미래에도 가족애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문제는 모든 서사가 가족애라는 이름 아래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 시간 동안 이야기는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갈등 > 가족애로 해결 > 더 큰 갈등 > 가족애로 해결.' 아이들이 무모한 행동을 하면 부모가 다시 구한다. 결말에 이르러선 반대로 아이들이 부모를 구하면서 감동을 주긴 하지만, 영화 내내 같은 구도가 반복되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관객은 생각한다. 그래, 알겠다고.


물론 가족의 모습 자체는 의미 있다. 이 영화 속 가족 형태는 새롭고 인상적이다. 아들 둘과 막내딸은 1편의 주인공 부부 사이의 아이들이고, 입양 딸 키리와 인간 마일스까지 함께 자란다. 부부는 원수의 아들 마일스와 키리가 서로 유독 아끼는 것도 묵인한다. 가족이 혈연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담아냈다. 인간 출신 아바타 아버지와 원주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극복하며 성장한다. 혼혈아가 겪는 차별과 편견도 얕게나마 그려낸다.


둘째 아들 로아크는 누가 보아도 차세대 주인공이다. 계속 반항하며 큰 사고를 치는 게 꼭 제이크 설리를 닮았다. 입양 딸 키리는 예수의 서사를 빌려왔다.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남들과 다르게 신 에이와와 교감한다. 두 사람의 외형은 '스카이피플' 즉, 판도라 행성을 무차별 폭격했던 인간 아바타를 닮았다. 그렇기에 혼혈아가 겪는 혐오를 매 순간 감내해야 한다. 그나마 아버지 제이크가 세상을 구해낸 영웅이니 그 정도가 약하긴 하겠다.





하지만 이런 가치 있는 메시지가 작위적인 설정 때문에 퇴색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키리의 출생이다. 그레이스 박사는 1편에서 인간의 몸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2편에서는 그의 아바타가 임신 상태였다는 설정이 갑자기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키리는 죽은 어머니의 살아 있는 몸에서 태어난 셈이다. 설명하는 것조차 이상한 설정이다. 1편의 악당 쿼리치는 죽었는데 2편 시작부터 아바타로 살아 돌아왔다. 심지어 어떤 낌새도 없었던 그의 아들도 갑자기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현대 관객의 시각에서 그레이스 박사나 쿼리치 대령은 그렇게 어린아이를 가질 나이대가 아니다. 언뜻 보기에도 그들은 50~60대다. 그런데 가임 기간이 훨씬 지난 여성인 그레이스 박사는 아바타라는 몸을 통해 죽어서도 아이를 낳는다. 그것도 ‘의식 없는 몸’에서 인공적으로 자란 키리를 ‘다른 이들이 꺼낸’ 설정이다. 영화는 ‘인공수정이 일상화된 미래’ 정도로 이를 얼버무린다. 아무리 미래 의학과 아바타 신체라는 장치가 있다고 해도, 설득력이 없는 설정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의 신체를 ‘플롯을 위한 장치’로 쓰인 점은 이 영화가 충분히 윤리의식을 갖추었는지 묻게 만든다. 키리의 기원을 ‘신화적 탄생’으로 해석하더라도, 여성의 자기 몸 결정권을 그레이스 박사의 짧은 인터뷰로 다루고 만 것은 아쉬움만 남는다.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여도 이상하지 않은 쿼리치 대령도 어린 아들 마일스가 있다. 마일스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때로는 동정하지만 어머니의 존재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일스의 어머니를 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제이크와 네이티리 부부까지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을 낳아 전부 또래인 것도 억지 설정인데, 이미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나 아들이 지구로 갔는지 안 갔는지도 모르던 쿼리치 대령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기 아이를 사랑한다. 숙명이라는 듯.


낳은 정 기른 정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아 모르는 감정이고, 낳으면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느끼길 바랐나. 다시 말하지만, 그레이스 박사도 쿼리치 대령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영화 내에서 설득되어야 할 감정선이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이 모든 무리한 설정의 목적은 하나다. ‘가족애’를 말하기 위함이다. 1편의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들을 모두 ‘자식을 위한 부모’라는 단일한 역할로 축소한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스스로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 이는 마블 시리즈가 범한 치명적 실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이언맨과 헐크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차세대 영웅들의 조연으로 전락시킨 것처럼, 카메론도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걱정하는 부모’로 만들었다. 다음 세대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 기존 세대 캐릭터를 뭉개버리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3편을 기다린다. 1편과 2편이 주었던 기술의 정점을 3편에서 또 한 번 깰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태껏 선한 입장이기만 했던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이 악하게 그려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억지 설정과 시대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 사상을 여전히 답습한다면 아바타 시리즈는 포장만 화려한 시리즈로 남을 것이다. 내내 선한 편이었던 나비족을 악인으로서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인으로서의 매력까지 없애 버릴까 봐 염려되기도 한다.


기존 아바타 서사의 아쉬움은 거대한 판도라 바다를 수조 안 어항으로 만들어 버렸다. 차기작은 내실을 채워, 저 먼 우주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만 같은 푸른 존재들이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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