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편안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얼마 전 고객센터와 통화하며 그들도 내 또래 친구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24일 날짜로 정기적으로 결제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27일에 다시 결제를 요구하는 창이 떴다. 결제 내역도 있고 프로필상 이미 제대로 등록이 되어 있음에도 결제해야만 진행이 가능하다는 문구만 나왔다. 당장 프로그램을 써야 했다. 마음이 급하니 우선 시키는 대로 했다. 결과적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이중 결제한 셈이 되었다.
오류가 확실했다. 고객센터와 통화했다. 이런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새롭게 업데이트되면서 발생한 오류인지, 내가 입증해야 할 상황이 많아져서 통화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이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담사의 목소리였다. 처음에 내가 전화했을 때는 그는 잔뜩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로 받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딱딱한 상담사 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통화 과정에서 변화가 생겼다. 다시 걸어온 상담사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마치 처음 낮은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니었다는 듯, 매우 편안한 목소리였다. 우리의 통화도 즐거워졌다. 통화 과정에서 내 닉네임을 말해야 했는데 발음이 힘들다 보니 나는 웃음이 터졌고 내 웃음소리에 그도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의 목소리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여러 차례 통화가 오가던 15분간 서로에게 집중했다. 나는 지극히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통화가 그에게는 어쩌면 모처럼 만나는 정상적인 ‘대화’가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상담 전화가 갑자기 걸려 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 대부분 문제는 통화에 집중하지 않을 때 발생했다. '집중하지 않는다'라는 건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발생한다. 전화를 받는 그가 감정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 내 문제를 처리해 줄 AI 도구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도구에 인사나 감사를 표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자마자 곧바로 전화부터 한다. 상황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상대가 그 순간 바로 해결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짜고짜 쏟아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되묻고, 그렇게 답이 늦어지면 감정이 급변한다. 내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며 직무 태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원하는 바가 뭔지도 모르고 전화를 걸었을 때 발생한다. 갑자기 전화를 받은 처지에서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스무고개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통화는 사실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아니다.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은 통화는 감정 소모만 남게 될 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고객센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젠지스테어(GenZ Stare)’가 화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젠지스테어란, Z세대에게 인사를 하거나 어떤 간단한 선택지를 줬을 때, 어떠한 대답도 없이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한 세대를 ‘나 때는’ 감성으로 비난하는 목적의 영상들이 많지만, 사실 이건 젠지만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확대될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 기저에는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문제가 깔려 있다. 젠지스테어가 언급되는 상황은 주로 서비스직과 관련되어 있을 때다. 즉, Z세대는 그냥 기계처럼 내가 원하는 걸 알아서 알아채고 가져와야 할 상대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상황 자체가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과연 Z세대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키오스크나 배달앱으로 사람과 아예 대화하지 않고 원하는 걸 사는 경험이 익숙해졌고, 서비스직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러한 행태가 나와는 상관없는 서비스직에 그칠 거라는 것도 안일한 생각이다.
상담사는 나에게 통화가 길어지는 걸 계속 사과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일하는 시간을 사과하게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일까. 상담사에게 전화할 땐 다 같이 숨을 한번 내뱉자. 내가 지금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통화버튼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자. 그의 편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