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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a Oct 12. 2021

(4/52) 삶이 쪼개진다는 것

100% 하나를 사는 것과 70% 짜리 두 개를 사는 것 중에 선택하기

2년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아니다, 나는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서 다른 곳도 다녀오니 한국에 다녀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다. 하지만 내가 직접 친구를 선택하고, 직장을 찾고, 사랑도 했던 곳은 서울밖에 없어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 떠오르는 건 내가 서울에서 만난 이들과 그곳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다. 


같은 동네에 살며 번개를 약속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니까, 한 달 전부터 연락을 돌려 약속을 잡았다. 내 달력은 이내 점심 저녁 점심 저녁 약속으로 빼곡해졌다. 그래도 달력에는 빈 공간이 충분했다 - 점심과 저녁 사이의 시간, 아침에 눈 떠서 보내는 시간에는 사고 싶었던 것을 사고 유럽에 남아있는 남자친구에게도 연락하고 병원도 좀 다녀올 예정이었다. 




다시 출국을 하고 돌아보니, 사람들과 밥 먹은 것 외에는 한 게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은행도 못 갔고,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는 한 번도 못 했다. 논의할 거리가 생겨 시끄러운 거리에서 서성이며 통화를 한 것이 전부. 나도 내가 서울에서 이렇게 눈코뜰새 없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절묘한 시차까지 겹쳐 나는 말 그대로 mind-blowing한 2주를 보냈다. 유럽에서의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태어난 나라에서 자라 지금도 거기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예컨대 내 파트너에게는, 이렇게 고밀도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본인에게 없다. 본국에서의 삶은 균형맞춰 흘러가고, 외국에서의 삶은 스쳐가는 시간일 뿐일테다. 한편 나는, 현 주거지에서의 삶이 나름의 안정을 이루고 있지만 결코 100%가 아니다 - 친구관계도 언어도 불완전하며 있는 자리에 70% 정도 만족하면 그냥 뿌리를 내려 살게 되는 게 이민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서울에 오면, 나는 그동안 채우지 못한 30%를 찾아 제한된 시간에 끼워넣으려 하고 운이 좋으면 그 30%가 70%이 되기도 한다. 2-3주 여행으로 70%라면 굉장한 가성비이지만 내 본거지가 아닌 곳에서 100% 로드는 없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내도 그건 내가 (과거가 있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어떤 공간에서도 여행자는 100%을 찍지 못한다, 언젠가 떠나거든.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여기서의 70%와 서울에서의 70%, 합하면 140%인데 사실 어느 곳에서도 100이 아니다. (그리고 합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100%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서 뛰쳐나왔고 서울에서 70%만 얻어가도 너무 행복한 지금이 좋지만, 볼드모트가 불멸을 위해 영혼을 7개로 쪼개고 결핍을 얻은 것과 같은 반대급부는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70%+70%으로 사는 게 좋지만, 언젠가 내게도 100%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순간이 올까. 또, 내게 남은 에너지를 더 잘게 쪼개 50%+50%+50%으로 살아야 하는 날도 올까. 그동안은 쪼개진 삶에 대해 별 감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한국 방문에서 다양한 생각이 들어 적어봤다. 삶이 몇 개로 쪼개지든 감내할 자신은 있으니 그만 쓸래 - 어디에서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반쪽만 거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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