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날달걀을 밥에 올려먹을까?

부드러움을 신뢰할 수 있을 때

by 한이람



편의점에서 감동란 하나 까먹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일본 사람들은 날달걀을 그냥 밥 위에 깨서 먹을까?
왜 우리는 그걸 선뜻 삼키지 못할까?

계란 하나를 앞에 두고도, 나라별 감각은 이렇게나 다르다.


일본은 날계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밥 위에 생계란을 깨고 간장을 뿌려 먹는 ‘타마고카케고항’은 국민식이다.

스키야키도 고기를 날달걀에 푹 찍어 먹는다.
계란말이조차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미덕이다.


계란 하나에도 나라의 감각이 있었다.


계란은 그들에게 ‘미끄러움과 윤기’라는 감각의 기쁨이다.

그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건 시스템이다.
일본의 계란은 세척을 넘어 살균 소독까지 거쳐 유통된다.
그래서 유통기한은 한국보다 짧다.
먹는 방식이 아니라, 먹을 수 있게 설계된 문화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익힌 계란’에 익숙하다.

간장계란밥도 대부분 프라이를 얹는다.

라면에 풀어 넣는 계란도 완숙에 가깝게 익힌다.

날달걀의 끈적한 점성이나 비릿함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이물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건 단지 맛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심리의 문제다.

끈적거리는 감각은 누군가에겐 건강이고,

누군가에겐 경계심을 불러오는 위협이다.




재밌는 건, 나도 한때 날달걀을 삼켰다는 사실이다.
서른 해 전쯤, 엄마는 매일 아침 날달걀 노른자 하나를 건네주셨다.
“영양가 있다”는 말과 함께.
그땐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꿀떡 삼켰다.
지금보다 덜 의심하고, 더 삼키던 시대.


같은 한국 안에서도 시간에 따라 감각은 달라진다.
이전 세대에겐 날달걀이 힘이었고,
지금은 위험하거나 위생 논란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결국, 부드러운 걸 삼키기 위해선
그 감각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하려면, 안전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그 감각을 '좋다고 믿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 끈적한 노른자를 아무렇지 않게 삼키던 아이였다.

엄마 손에 들린 작은 숟가락 하나에
온몸의 믿음을 실었던 시절.
그건 위생도, 시스템도 아닌
사람을 믿고 감각을 넘기던 때였다.


그땐 그냥, 삼켰다.


지금은, 조심스럽다.
계란 하나를 놓고
나는 부드러움보다 익숙함을 먼저 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

프롤로그부터 맛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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