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ête de la Musique
여행지에서 우연히 들리는 음악소리는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고,
갈길 잃은 시선을 한 순간에 돌아보게 만든다.
만약 이러한 행동과정이 100m마다 한 번씩 있다면? 그날 우리는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안 될 것이다. 프랑스에는 이러한 날이 존재한다. 바로 매년 6월 21일 개최되는 프랑스 음악 축제(Fête de la Musique)이다.
사실 이 날은 프랑스 출국 전부터 달력에 체크를 해뒀다. 누구보다 현지에 녹아드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날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제일이 다가올수록 공연정보를 수도 없이 보았다.
이 정도 보았으면 어떤 종류의 공연이 있는지 다 알만도 한데, 공연이 계속해서 등록되었기 때문에 공연 정보를 다 보겠다는 나의 오만함을 잠시 접어두고 천천히 맞는 공연을 찾았다.
그리고 찾은 하나의 공연. 1920년대 전쟁이 끝나고 어쩔 수 없이 묵혀두었던 인간의 본능이 다시금 꿈틀 되던 시대, 유흥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대, 그 시대를 노래하는 인디밴드가 하는 공연. 바로 이거다!
가수도 가수이지만, 공연 장소가 더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다른 문화유산에 묻혀 사람들의 인기척이 덜한 곳이지만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Hôtel de Sens라는 곳에서 공연을 한다. 이런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나만 아는 공연을 진행한다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공연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축제를 즐기며 파리를 조금 더 걷고 싶었다. 조금은 누그러진 태양의 열기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여행객들의 기분 좋은 소음.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 소리. 자연스럽게 번지는 미소를 통해 지금 우리의 기분을 알 수가 있다.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권리, 그 속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고, 박자에 맞춰 살짝살짝 흔들리는 몸짓. 모든 행위들이 사랑스럽다.
생루이 섬을 잇는 투르넬 다리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공연 장소인 Hôtel de Sens에 도착했다. 공연시간이 남아 정원에 앉아 잠깐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보이는 이곳의 풍경. 동일하게 조경되어 있는 프랑스식 정원 속에 각자의 개성대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들과 나무들.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다.
정해진 시간 10분 전에 공연이 진행되는 문으로 들어갔다. 웅장한 건축물 사이로 작게 보이는 공연장. 트럭을 개조한 공연장이다. 아직은 한산했다. 어쩌면 우리를 위해 준비한 공연일까? 착각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한쪽에서는 한산함과 같은 분위기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한 노부부가 춤 연습에 열중이었다.
‘오늘 공연을 하시는 걸까? 아님 정말 열정적으로 축제를 즐기는 것일까?’
그러한 노부부의 열정을 알아주었는지 관객들이 하나둘씩 공연장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관객들의 연령층이 정말 다양했다. 꼬마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장소를 가득 채웠다.
환호.
연주자들이 도착했다. 악기세팅과 함께 무대 쪽으로 모이는 사람들. 우리도 한걸음 앞으로 가서 그들 틈에 합류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아예 무대 앞으로 합류하는 사람들. 그중에는 아까 열정적으로 춤 연습을 하는 노부부도 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소리에 몸을 맡겼다. 축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게 다 계산된 퍼포먼스였을까?
그때 바로 가수분이 무대로 올라왔다.
다시 한번 환호.
다부진 연주와 더불어 힘이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에 주변 관객들은 다소 격양된 춤사위로 보답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축제를 즐겼다. 이 분위기가 다소 낯선 우리는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뒤에서 살짝살짝 즐기다 음악과 춤으로 가득한 공간을 빠져나왔다. 언젠간 혼신을 다해 즐기지 못한 이 순간을 후회하겠지?
센강에 비쳐 일렁이는 붉은 물결을 보며 집 쪽으로 걸었다. 파리시청사를 지날 땐 웅장한 클래식 소리로 가득했고, 퐁뇌프 쪽을 지날 때는 EDM 소리가 가득했다.
길을 걸으며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가?
음악 역시 하나에 치우쳐 있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각자의 취향에 따라 즐겼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파리,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정당한” 요구 속에 숨어 있는 “당연한” 배려인 듯하다. 요구와 배려가 적절하게 융화될 때 개인의 이기심이 적당한 선을 유지할 있는 게 아닐까?
파리 시민들은 음악에서 조차 ‘이기심의 적당한 선’을 유지했다. 가끔은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적당한 선만 유지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