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퇴사를 통해 알게 된 '나'라는 존재
퇴사에 매번 같은 이유가 반복된다면?
그건 아마 나의 문제라는 것이 어느 정도 기정 사실화 된 듯하다. 이걸 인정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3번의 퇴사를 하기 전까지. 그러나 이제는 인정하고자 한다. 매번 같은 이유가 반복되었기에.
# 처음 맛보는 '회의감'이라는 무게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기세 당당한 신입. 마치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잔뜩 부푼 기대감.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다. 허드렛일조차. 내가 조직에 뭔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설렘이 앞서 집에 도착하면 저녁 8시가 넘어가지만 '피곤'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한 존재. 매번 반복되는 일 그리고 이 일조차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나의 부풀었던 기대감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기대감은 회의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 날도 다른 날과 변함없이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서 이 분야를 전공했고, 교생실습까지 했나?'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조직에서도 충분히 내가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씩이라도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의견을 내기도 하고(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작고 하찮게 보일지라도)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해보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작년에 했던 것들을 참고해서 그대로 하라는 답변과 자연스럽게 묻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한테 뭘 바라는 것도 이상하고, 조직과 상급자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경험들이 큰 회의감으로 다가왔다. 결국 '내가 아무리 바둥바둥해도 바뀌는 건 없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까지 되었다. 그렇다. 첫 번째 퇴사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이다.
# 잊고 살아왔던 '선택권'
속으로 퇴사를 결심하며 돈을 모았다. 퇴사의 결정부터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생겼다. 어색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선택의 기회.' 당장 조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도피성 여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제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해야 한다. 다시 찾아온 선택의 연속. 지금까지 갔었던 나라 중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곳을 돌아보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미얀마.'
나의 첫 해외이자 첫 해외봉사로 떠난 곳.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와 친절함에 여전히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 곳. '좋아! 미얀마를 시작으로 동남아를 돌고, 살면서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남미에 가보는 거야!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갈지 모르잖아?'
총 80일간의 여행.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여행일정이 막바지가 되면서 서서히 현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전역이 다가오는 말년병장이 사회에 나가서 뭘 할지 고민하는 것과 같이. 그중 몇몇은 군대라는 조직에 더 남아 있는 이도 있었다. 이처럼 나 또한 여행이라는 공간에 더 남아있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그런 나의 기대를 한순간에 와장창 깨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첫 회사였던 체육회에 입사하기 전에 교직에 대한 꿈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특수'체육'교육 전공이지만, 당시 은연중에 나는 나의 전공에서 취업할 수 있는 곳을 등급화하고 있었던 거 같다. 임용고시를 합격하지 못하고 또는 공부할 자신이 없는 이들이 다음음 차선책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체육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인가? 에 대한 고민보다 이쪽 분야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지위 등을 나도 모르게 계속 비교하며 주입해 온 탓에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임용고시 공부를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어쩌면 나에게 으름장을 두고 있는 것일지도. '너 다시 한번 생각해 봐. 그게 진정 네가 좋아하는 거야?'라고.
그리고 그때 어느 친구의 달콤한 제안.
"여행 잘 다녀왔어? 다름이 아니고 우리 체육회에 지금 한 자리가 생겨서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는데 이쪽 분야를 잘 아는 경력자를 뽑고 싶거든. 혹시 생각 있으면 알려줘."
현재 코로나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임용고시 강의들도 다 비대면으로 돌린 상태고, 독서실이나 도서관 등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진 상태.
"좋아! 채용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할게."
그렇게 두 번째 회사 역시 서울이 아닌 본가와 더 가까운 곳의 체육회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이전의 경력이 체육회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전보다는 조직에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 사업 하나하나에 관여할 수 있도록 움직였다. 실제로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이런 점에서는 이전에 느낄 수 없는 조직에서의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상급자들의 태도와 인성이었다. 일과 조직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우선이었고, 그들의 사생활 문제가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기 일 수였다. 작은 것들은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큰 문제들은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더라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저히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고 내가 앞으로 이곳에서 성장하고 싶을 때 그러한 것들이 방해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입사 제안을 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 퇴사.
이쯤 되니 '문제가 나에게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는 단순 반복적인, 주체적인 일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지만, 내가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어야 하는데... 나의 성격 탓이 크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상급자들의 태도와 인성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인간관계에 서툰 나의 성향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반길일은 아니지만 이전 직장의 다른 부서, 현장에서 지도할 수 있는 분야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보다 내가 지도하게 될 대상자분들과의 관계만 생각하고, 체육을 지도하는데만 신경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다른 곳에서는 신경 쓸 일이 적었고 체육지도에만 몰두하면 되었기 때문에 성취감도 있었고, 내가 모든 수업을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기에 주체성도 충분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기존에 서울시 소속이었던 우리들은 내부의 사정으로 인해 각 자치구 소속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사실 이때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붙다 보니 이쪽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각 자치구로 흩어지기 전에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자치구 체육회에 직접 찾아가 이곳으로 오고 싶다는 관심을 표현했다. 이런 일을 저지르고 나도 이렇게 뻔뻔해질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게 잘 돌아갔다. 현장에서 지도하는 일은 그 자체로 너무 좋았고, 다양한 사업도 직접 맡아서 행사나 대회 기획과 운영 측면에서도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뿌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일도 많아지고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조금씩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일 자체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었다. 벌써부터 이게 힘들면 내가 이곳에서의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에 계속 있는 게 맞을까? 결국 세 번째 퇴사도 피할 수 없었다.
# 3번의 퇴사를 통해 알게 된 '나'라는 존재
잊을까 하면 찾아오는 회의감.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세 번째 반복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분명 외부가 아닌 '나' 내부에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난 퇴사의 연대기(?)를 돌아보니 나라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나는 어딘가에 소속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회사에서 하는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을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뜻이다. 나라는 사람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동기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당시 나는 축구를 그만두고 난생처음 공부를 시작했다. 당장 대학을 들어가야 하므로 진로를 정하자마자 필요한 과목들을 정리했다. 사실 필요한 과목에 맞게 대학을 정한 것도 더러 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수학은 단시간에 숙지할 수 없어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영어나 사회 등에 집중하고 정시 역시 포기하고 내신에 집중했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의 성과는 이룰 수 있었다. 수학과 과학 등은 한자리 수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두 번째,
이는 첫 번째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인데 내가 주체가 되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일에 대한 목적성과 동기는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 일이 만약 내가 주체가 돼서 즉 내가 좋아하고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지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사를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약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며 운동을 해온 것도 있었지만 결국 지금 내가 하는 것에 내가 주체가 아니라 학교의 이익, 선수와 관리자 등 개개인의 이익 그리고 (당시에는) 대학과 프로에 가려면 인맥이라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지속하는 에너지가 급격하게 사라졌다.
세 번째,
생각보다 더욱더 사람과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회사 사람들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도 힘들고 사소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 성향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내가 모든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내가 마음이 내켜 먼저 다가가고 여전히 힘이 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같은 관심사나 같은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 하고는 잘 지낸다. 암묵적인 수직적 관계가 존재하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번의 퇴사를 하며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의 현 모습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 나를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조직에서 나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가슴 뛰는 일(좋아하는 일)을 찾자!
-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내가 주체가 되어 설계하자!
- 나와 비슷한 관심사나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어 연대하자!
이제 해야 할 일들은 명확해졌다. 먼저 수동적인 조직에서 나오는 데는 성공. 그러나 바로 장애물에 부딪히고 말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만 하면 앞으로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지? 자 그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아볼까? 근데 그게 대체 뭘까?'
# '나'라는 그릇에 무엇을 채울까?
사실 안 해보면 모르잖아? 이것저것 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도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하게 되었다면 내가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 조직과 왜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좋을 거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그리고 그걸 그냥 넘기지 말고 한번 종이에 적어보면서 깊게 탐구해 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기억은 휘발되기 쉬우므로. 진지한 고민일수록.
이런 시간들이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나라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 그릇에 더 애정이 가지 않을까? 쉽게 말해 나한테 더 애정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매장에 가서 이쁜 그릇을 사게 되면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쁘게 담고 싶어지는 경험. 마찬가지로 나라는 이쁜 그릇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좋아하는 것들을 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될 것이다.
이제 나라는 그릇에 뭘 담을지 고민할 차례이다.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될지 다시 한번 길거리를 걸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