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떠난 프랑스

도피성 워홀

by 떼오 Theo
가장 중요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야 할 리스트는 정해졌지만 정작 중요한 리스트 속 알맹이는 채우지 못한 상태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는 나의 노력은 더 중요한 일들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결혼과 이사라는 거대한 일정들이 내 앞에 '두둥'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나의 개인적인 고민들은(조만간 이 고민들은 함께하는 고민이 되겠지만) 미뤄둔 채 당장 앞에 놓인 일정들을 하나둘씩 처리해 나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뭐?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그러던 중 내면 깊숙이 있던, 잠시 잊고 있던 욕망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일종의 사건(?)이 있었으니... 아내가 즐겨보는 한 프랑스 생활을 담은 유튜브를 보며 "나도 유학생처럼 프랑스에 살아보고 싶다."는 한마디.


출처_Vlog de yejin예진


'프랑스?'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곳이다. 프랑스라는 곳은 유럽여행하면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나의 이성보다 내면에 있던 한 녀석이(그 녀석도 여간 답답했나 보다) 급하게 소리쳤다. 아마도 속에서는 크게 소리쳤을지 모르지만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차분하고 작은 목소리. "그럼 우리 프랑스로 가자!" 책임질 수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차분한 목소리로.


생각해 보면 이런 반쪽짜리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는 결혼과 이사라는 큰 일정을 끝내고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나라는 내면은 솔직한 거 같다. 그리고 겁쟁이는 분명하다.


# 프랑스 워홀 준비 시뮬레이션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4가지이다.


첫 번째, 아내 설득시키기

사실 첫 번째가 가장 쉬웠다. 이미 흔들리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만 흔들면 되었고(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지금 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 워홀 비자 나이가 코로나로 인해서 2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지노선이 바로 지금 기준으로 내년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이번에 못 가면 워홀 비자로는 프랑스에 머물러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아내는 쉽게(?) 설득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가족 설득시키기

가족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조금의 사전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 다양한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우리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본가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 들렀다. 그리고 우리의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뭔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잘 다녀오라는 말을 꺼내셨다.


'아니 어떻게 알았을까?' 사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놀라실까 봐 내가 조금씩 조금씩 말을 흘렸다. 요즘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데 재밌다~, 프랑스에 조금 길게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거기서 살면 어떨까~ 등등. 나는 이전에도 3개월 정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기에 조금 타격이 덜했나 보다.


이제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설득시켜야 한다. 처가로 내려갈 시간이 되지 않아 어떻게 어떻게 장모님이 서울로 오시는 날을 잡아 백화점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이쁜 카페도 갔다. '이게 다 빌드업이었다.'


아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지금이야!'

아내는 덤덤하게 우리의 계획을 말했고, 장모님은 귓속으로 들어오는 딸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을 한껏 앞으로 기울이셨다. 그리고 꺼내신 한마디, "뭔가 수상하긴 했어. 갑자기 서울에서 밥을 먹자고 하지 않나, 백화점에 오지 않나." 그러면서 덧붙어 주신 한마디가 너무 힘이 되었다.

"너네는 뭘 해도 알아서 잘할 거 같아서 걱정이 없어."


이어서 아내의 한마디. "그럼 엄마가 선택할 수 있으면 우리가 프랑스 가는 게 좋아? 안 가는 게 좋아?"


"안 가는 게 좋지!"


부모입장에서 자녀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마음껏 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느 부모나 똑같은 마음인 거 같다. 그래도 우리를 믿고 선택을 존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세 번째, 워홀 비자 준비하기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으니 바로 가장 중요한 비자를 준비해야 한다. 프랑스 워홀 비자 준비는 까다롭기로 이미 유명하다. 먼저 헝데뷰(프랑스어로 약속)라는 면접일정을 잡고, 면접 때 제출할 서류들을 준비해야 한다. 여권사본, 항공권, 계좌증명, 신체검사, 보험 등 기본적인 서류는 기본이고 지원동기서 등 프랑스로 워킹 홀리데이를 와야 되는 이유도 자세하게 어필해야 한다.



이미 준비해 본 워홀 선배들의 다양한 후기를 참고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체크해 가며 꼼꼼하게 준비했다. 혹여나 빠진 서류가 있으며 안되니. 하지만 헝데뷰 당일, 나는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있었다. 나는 별 탈없이 통과했지만 아내의 서류 중 하나에 작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니 분명 서류도 동일하게 준비했는데 왜 나는 통과했고, 아내는 안된 거야?'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시간에 맞춰 겨우 서류를 전달하고 그로부터 3주 뒤 그렇게 원하던 워홀비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시작부터 매콤하게 맛본 프랑스의 싸데펑(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뜻) Ça dépend.


네 번째, 프랑스어 배우기

이제 프랑스로 가기 전 마지막 미션 바로 프랑스어 배우기이다. 이번에는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 최소 6개월 이상 지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간단한 프랑스어 정도는 배워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1월 1일이 되자마자 싸늘한 홍대거리를 걸어 매주 2번씩 프랑스어 학원을 전전긍긍했다. 추워서 그런지 나오는 학생수도 적었다. 아베쎄데(ABCD)...겨우겨우 한 글자씩 읽어본다. 영 어설프다. 영어도 못하는데 프랑스어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며 의지를 불태우지만, 난생처음 접하는 언어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간듯한 느낌은 꽤 좋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감정에 조금 흥분도 되었다. '언젠가 낭만적인 프랑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프랑스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 프랑스에서의 첫 감정은 외로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감격에 젖을 새도 없이 이민가방 하나와 큰 캐리어 두 개를 챙겨 택시를 타고 우리의 임시거처 에어비앤비에 도착. 정신없이 지나간 첫날밤 그리고 시차에 정신을 못 차리는 우리. 잠시 숙소를 나와 센강 근처를 걸으며 아내와 지금의 감정을 공유한다.



서로의 감정에 공감한다. '외로움' 혼자여서 오는 외로움이 아니다. 같이 있지만 다른 느낌의 외로움이 사무쳤고 답답함이 끝없이 밀려온다. 앞날이 보이지 않은 채. 언어에서 오는 답답함도 있지만 낯선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답답함이 더 컸다. 그렇다고 회사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시키는 것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러지도 못한다. 아무도 시키는 것이 없기에.


'그토록 원하던 완전한 자유를 얻은 거 아닌가?'


# 새로운 취향을 붙잡아 두기


결혼 후 32살이라는 나이에 떠나온 프랑스. 같은 나이의 친구들, 지인들은 한창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갈 때 우리는 돈, 시간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내려만 놓으면 다행이지, 써가면서가 맞을 것이다!) 낯선 나라인 프랑스로 온 것이다. 그러니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진짜 웃긴 게 이런 생각을 한 게 겨우 파리에 온 지 이틀차였다.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니...' 욕심쟁이가 따로 없다.


우리는 잠시 긴 여행을 떠나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 집? 안 해도 좋고, 안 구해도 좋다.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흘러가는 대로 프랑스에 우리를 맡기기로 했다.

퇴사 후 첫 여행을 떠났던 그때처럼. 처음으로 만끽한 선택권에 대한 자유를, 하루하루를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던 그때처럼.



한결 홀가분 해지 마음 탓일까? 파리 사람들이 밝게 건네는 표정과 인사가 보이기 시작했고, 무서웠던 길거리가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인 거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보이는 테라스, 그림, 공원 등 관심이 생기면 발걸음을 잠깐 멈추기도 하고 더 흥미가 생기면 그곳에 머무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느끼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지극히 일상적이었던 것조차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커피를 사 먹는 것들도 완전히 새로운 자극이 된다. 하지만 이조차 금방 익숙해져 버린다. 여행을 떠난다고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자극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잡아 놓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자극에 계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내가 이전에 관심을 느꼈던 것들은 쉽게 소멸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그러한 자극을 붙잡아두었다. (불행히도 한국에 오자마자 사진들이 모두 지워져 버렸지만... 이때 깨달았다. 그것들 역시 잠시 붙잡아 둔 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이런 행위들이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확실을 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AI의 할루시네이션과 같이 내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다는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중 하나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수확이 아닐까? 평생 살면서 좋아하는 것 하나 발견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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