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들은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멀어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이 충동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몸에 익힌 자기 보호 본능에 가깝다. 누군가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내 감정이 흔들리고, 내 삶이 달라지고, 내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회피형은 깊은 관계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도망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대화를 피하거나, 답장을 천천히 한다. 갑자기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다. 또는 관계를 가볍게 유지하려고 한다. 좀 쉬고 싶다며 거리를 두기도 하고 혹은 아무 말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상대로서는 상처뿐이지만 회피형은 자기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있다.
‘내가 너무 가까워지고 있어. 이거 위험하잖아. 조금만 멀어지자. 그래야 내가 덜 다칠 거야.’
회피형 사람들에겐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그들이 사랑을 몰라서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이 너무 가까워질 때의 감정적인 책임과 변화가 무서워서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회피형 애착을 흔히 자기 긍정, 타인 부정이라고들 하지만 자기를 온전하게 긍정하기보다 겉으로 좋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좋아 보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예민하다. 그들은 때로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회피형은 오해를 종종 받곤 한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
“나한테 관심이 없나?”
“왜 좋은 순간마다 멀어지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깊게 느껴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가까움 자체가 그들에게는 두렵다.
그러면 회피형 애착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불안형 애착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타고난 기질은 아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누군가를 밀어내는 법, 감정을 숨기는 법, 거리를 두는 법을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인 정서적 경험들이 애착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는 사랑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누군가는 사랑이 멀리 있어야 안전하다고 배운다. 회피형은 후자에 가깝다.
회피형 사람들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감정을 숨길 것을 강요당한 경우가 많다.
가령, 아이가 울고 있으면 주 양육자나 어른이 와서 “왜 울어?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경우나, 슬프다거나 외롭다는 감정을 꺼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따뜻한 공감이 아니라 돌아오는 반응이 당황, 무시, 짜증인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는 이렇게 배운다.
감정을 드러내면 귀찮은 사람이 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혼난다.
내 감정은 안전하지 않다.
이렇게 감정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아이는 감정을 꺼내 놓기보다 감정을 닫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된다. 그는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진다.
또는 지나친 독립성이 강조되는 환경에서 큰 경우도 회피형 애착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매번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아이는 의지하면 약한 사람이 된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학습한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정서적 무시나 비난을 하는 경우도 회피형 애착을 만들 수 있다. 결국 그들은 감정적 연결보다는 혼자서도 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타인이 말하는 감정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힘든 걸 나누지 않아도 돼.”
“도움을 요청하면 민폐일 수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하는 게 낫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독립성은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정서적 독립이 아니라 정서적 회피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랑 앞에서도 본능이 이렇게 반응한다.
“감정을 나누는 순간 나는 약해질지 몰라.”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결국 실망으로 끝날 거야.”
“내가 기댔는데 상대가 떠나갈 수도 있어.”
그들은 감정을 나누기보다 거리를 유지하는 쪽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과거의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 회피형 애착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줬다가 크게 상처받았거나, 기대했다고 배신당했거나,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떠났거나 하는 경험은 회피형 애착을 만든다.
“나는 그 아픔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아예 흐트러지기 전에 선을 그어야 해.”
관계가 무르익어 갈 때 그들이 뒤로 물러나는 이유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시 실망할까 봐, 다시 흔들릴까 봐, 선제적으로 거리를 둔다. 뒤늦게 상처받는 것보다 미리 멀어지는 것이 자기 마음을 덜 다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피형은 종종 ‘애초에 깊어지지 말자’라는 전략을 취한다. 그 전략이 관계를 망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들의 진짜 마음은 사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피하려는 것이다.